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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 해양 생태지도 만드는 '수중과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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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 해양 생태지도 만드는 '수중과학회'

입력
2011.09.3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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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8월 27일 오전 7시경. 독도 연안 생태조사를 하려고 8명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40여분이 지나고 해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사람은 7명. 다이버 한 명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솔자였던 명정구 수중과학회장(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류에 떠밀려갔구나 싶었다. 독도 연안은 조류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곳.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떠내려갔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다급히 배를 이리저리 몰았다.

매일 4km 뛰며 체력관리

5분이 지나고, 다시 5분이 흘렀지만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다시 5분이 지났을 무렵, 애초 다이빙했던 곳에서 동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에서 빨간색 풍선이 아주 작게 보였다. 소시지라 불리는 이 풍선은 다이버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데 쓰인다. 그 풍선 옆에 마지막 한 명이 있었다.

"그때, 정말 놀랐지요. 우리나라 바다는 특히 수온이 낮고 물살이 세요. 다이빙하기에 그만큼 힘든 환경입니다. 안전수칙을 잘 지켜도 드물게는 이런 사고가 생겨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당시를 회상하곤 명 회장은 한번 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뒤로 한 달이다. 요즘 명 회장은 바다에 나갈 준비를 다시 하고 있다. 6일 제주도 서귀포 연안 해양생태보존구역으로 떠난다. 다이빙 장비는 세탁해 소금기를 제거하고 잘 말려뒀다. 소금기를 없애지 않으면 장비가 부식돼 위험하다.

명 회장의 나이 56세. 올해로 다이빙 경력 35년째다. 환갑을 바라보지만 매일 4㎞씩 달리며 체력관리도 한다. "어선을 타고 다이빙하러 나가면 10㎏이 넘는 장비를 메고 배의 문턱을 수시로 오르내려야 해요. 여간 힘든 게 아니죠. 체력 달리면 못합니다."

바다 사나이들

명 회장을 따르는 바다 사나이들이 있다. 100여명의 수중과학회 회원들이다. 함께 1년에 1, 2번 수중생태조사를 떠난다. 수심 수십m 깊이까지 들어가 바닷속 지형과 동식물의 위치, 생김새 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영상과 그림으로 남긴다. 바닷속 15m만 들어가도 수압은 멀쩡한 농구공을 찌그러트릴 정도로 세다. 수심 30m의 수압은 기압의 세 배다. 웬만한 다이빙 실력으론 어림도 없다.

그런데 회원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명 회장이야 해양생물분류학을 전공한 과학자니 연구를 위해 수십 년째 다이빙을 해왔다 쳐도 의사나 변호사 출판인 기자 회사원 같은 사람들은 생업과 아무 관계도 없는데 그 험한 물 속 드나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환경도 열악하다. 번듯한 다이빙용 배도 하나 없어 근처 어촌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빌려 써야 한다.

그들을 수중 세상으로 이끄는 건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우리 바닷속을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손으로 알리겠다는 책임감이다. 바다의 중요성은 많이들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 바닷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생물이 어디에 사는지에 대한 과학적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996년 경남 진해에서 군의관으로 있었어요. 잠수사고를 당한 해군들을 치료하다 수중과학회를 알게 됐어요. 다이빙 할 줄 아는 대학교수들 중심으로 다이빙을 해양학술조사에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어요. 저도 다이빙 좀 하던 터라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인연을 맺었죠." 경남 통영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김희덕 회원의 얘기다.

1992년 수중과학회 출범 때부터 합류한 이선명 회원은 평소엔 다이빙전문잡지를 만들다 수중생태조사 나설 때면 카메라를 든다. 40년간 다이빙만 7,000번 넘게 한 베테랑이다. 이젠 물고기에 대해서도 도사가 됐다. "수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카메라로 물고기를 쫓아만 다니려고 하면 허탕 치기 십상이에요. 일단 어디 사는지부터 알아야죠. 책에도 안 나오는 물고기들 생활사, 저한테 물어보세요."(웃음)

수중과학회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뜻 있는 과학도들도 모였다. 어류분류학 석사 출신 조경희 회원은 스킨스쿠버가 취미다. 그는 "수중과학회 활동으로 취미생활과 공부를 함께 하는 셈"이라며 "몇 년 전부터 독도 연안에서 열대성, 아열대성 어종을 실제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 결실, 그러나...

드디어 지난해 수중과학회의 첫 결실이 나왔다. 이제까지 한 조사자료를 모아 독도 연안 해양생태지도를 만든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해양생태지도다. 앞으로 다른 연안의 해양생태지도도 계속해서 만들 생각이다. 내년 7월엔 독도에서 국내외 다이빙 과학자들이 참가하는 '수중생태 사진촬영대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이어갈 동력이 부족하다. 현재 수중과학회 평균 나이는 50대 중반. 해양생태에 관심을 갖고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젊은 회원이 없다. 과학도라도 마찬가지다. 명 회장은 "수중과학회 활동으론 1년에 논문 한 편 낼 정도"라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수 있는 연구업적이 쌓이지 않으니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로 우리 수중생태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누군가 계속 지켜봐야 한다. 수중과학회는 그 일을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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