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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포에버' 금서에서 고전으로… 불편한 진실 '10대의 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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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포에버' 금서에서 고전으로… 불편한 진실 '10대의 性'

입력
2011.09.3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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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버/주디 블룸 지음·김영진 옮김/창비 발행·268쪽·9,500원

이제 열일곱인 내 아들이 같은 반 여자친구와 섹스를 즐긴다면? 착실한 모범생인 줄 알았던 내 딸이 교복 주머니에 피임약을 넣고 다닌다면? 스스로 열린 부모라고 자부깨나 하는 이들도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일차적 신체 반응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아무리 그래도…" 같은 외마디 비명만 뱉어내다 십중팔구는 단호한 징계 내지 교정 절차에 돌입할 것이다. 성과 사랑이 인간의 본능이기는 하지만, 10대의 그것은 어른들에게, 언제나 불편한 진실이다.

청소년들의 사랑과 성을 과감하게 묘사한 미국 아동문학가 주디 블룸의 청소년소설 <포에버> 가 국내 초역됐다. 1975년 폭풍과도 같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출간돼 미국 내 수많은 지역의 학교와 공공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됐던 책이다. 하지만 10대 소녀들이 베개 밑에, 혹은 옷장 깊숙이 감춰두고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큰 호응을 얻으면서 지금은 각종 도서관의 추천 목록에 빠지지 않는 청소년 문학의 고전이 됐다. 영미권의 많은 소녀들에게 이 책을 소유하고, 읽고, 쑥덕거리고, 논쟁한다는 것은 명백한 성숙의 표지이자 성인의 세계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었다.

우선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이 소설의 불편한 측면부터 직시해보자. 그것은 단연 두 주인공의 성행위와 관련돼 있다. 두 틴에이저가 파티에 갔다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과 마음은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성관계를 갖기까지 두려움과 설렘에 어쩔 줄을 모른다. 마침내 관계를 갖기로 결정한 캐서린과 마이클. 삽입 성교의 공포로 서로의 자위를 도와주는 장면이 이어지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둘은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이후 캐서린 엄마의 말처럼 "다시는 그냥 손만 잡는 정도의 관계로는 되돌아갈 수 없"게 된 두 사람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체위로 서로에게 탐닉하는 첫사랑의 뜨거운 연대기가 캐서린의 소박한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다.

묘사의 수위가 이쯤 되면 읽는 이의 머리 속엔 불량한 두 청소년의 초상이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평범하고 반듯한 소년 소녀다. 이 소설의 미덕 중 하나는 성에 대한 솔직한 논의와 묘사를 평범한 10대들의 일상적 삶의 문맥 속에 직조해 넣은 기술에 있다. 어느 대학을 갈 것인지 고민하는 캐서린과 마이클, 무분별한 성관계로 임신한 후 아이를 낳아 입양시키는 친구 시빌, 부모와의 갈등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또 다른 친구 아티 등 10대들의 고민이 학교와 친구, 가족 같은 보편적 관계망 속에서 진행된다.

이 소설이 도발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대신 성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클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캐서린을 위해 기다림을 인내하고, 둘은 서로의 감정을 세심하게 보살피며 사랑의 발로로서의 섹스를 스스로 결정한다. 가족들은 우려 속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을 보호해주고, 캐서린은 가족계획협회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을 받고 피임약을 처방 받는다. 그리고 이토록 뜨거운 사랑도 종내는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것을 두 주인공은 어렵지만 받아들인다.

작가는 출간 30년을 맞아 2005년 가디언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고, 아무도 함께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이 어떻게 성에 관해 사려 깊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바 있다. 몸만 커버린 아이들에게, 마음도 그만큼 자라나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는 이 책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적으로 읽힌다. 왜냐하면 첫사랑은 언제나 있을 것이고, 첫 경험도 언젠가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핸드백 광고에도 벗은 몸이 등장하는, 도처에 성이 만연한 시대. 언제까지나 안 된다고, 참아야 한다고, 금욕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유용할 책이다.

주디 블룸은 이 소설로 청소년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미국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마거릿 에드워드상을 수상했다. 원제 'Forever'.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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