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유럽 재정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 달라 이중잣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IMF는 파산위기에 처한 국가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항상 까다로운 조건을 강요했다. 아시아 위기 때는 한국, 인도네시아 등에 강도 높은 처방을 내려 금융기관 수십 개가 사라지게 했다.
한국에선 고금리와 긴축, 거품을 제거하는 구조조정을 요구해 저승사자로 통했다. 이처럼 엄격했던 IMF가 유럽 위기에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9일 보도했다.
IMF의 유럽 편애는 민간 금융기관이 보유 중인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국채의 재매입을 약속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간은행이 책임질 손실을 IMF가 보전해 은행 파산을 막아주겠다는 것이다.
IMF는 또 수천억 달러 규모의 그리스 국채 처리를 미루며 전례 없이 많은 자금을 특혜에 가까운 조건으로 지원하고 있다. 10월 초 결정 예정인 IMF의 그리스 지원 1차 구제금융 6차분은 80억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유럽에 솜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IMF는 과거 신흥국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가혹한 처방의 적절성 논란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만은 이런 IMF 관료들을 아픈 환자는 피를 흘려야 낫는다고 믿던 '중세 의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시아권은 IMF의 유럽 봐주기가 이 기구의 고위층과 이사진 24명에 유럽인이 다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만 해도 그리스 국채 최대 보유국인 프랑스의 재무장관 출신이다.
WP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IMF 최대 지분보유국인 미국이 유럽위기가 자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 특혜를 묵인했다는 지적도 있다. IMF는 아시아 위기 때와 달라진 현실이 다른 처방을 요구한다는 상황론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 3년 전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처럼, 세계화 탓에 한 나라의 위기가 전세계로 파급될 수 있어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복잡해 IMF로선 미지의 영역인 유럽, 유로화의 특수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재무장관은 "모든 것이 과거보다 규모가 커졌고 연관성도 훨씬 커졌다"며 "세계는 우리가 10년 전 목격한 것과 달라져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 봐주기는 오히려 위기를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IMF가 그리스 국채 손실을 일찍 걷어냈다면, 일부 은행이 퇴출은 돼도 유럽위기가 훨씬 빨리 처리되고 그리스도 심각한 상황으로 가진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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