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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후폭풍/ 장애인 시설 인권유린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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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후폭풍/ 장애인 시설 인권유린 실태

입력
2011.09.2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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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봐요. 사람들 중 반이 장애인이었다면 휠체어를 타고 다녀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 거라고. 혹 모두가 장애인이고 몇몇만 비장애인이었다면 오히려 비장애인이 창피를 당했겠지요?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회는 장애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요. 사회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배우지도, 일하지도, 연애를 하지도, 평범하게 살지도 못하고 (장애인)시설에 사는 거에요. 나를 고쳐야 하나요? 사회를 고쳐야 하나요?"

9살 때부터 20년이 넘게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갇혀 살아온 지체장애1급 김현수(35ㆍ경기 김포)씨가 올해 초 쓴 에세이 일부다. 그가 있던 시설의 이사장은 장애인연금을 가로채고, 국고보조비를 아들 유학비 등으로 써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회가 장애인들을 품지 못하고 전국 452개 생활시설(미신고 시설 제외)로 내몬 사이, 시설 장애인들은 비리와 폭력, 인권유린에 노출돼 있다. 광주 인화학교 상습 성폭행 사건도 사회와 격리돼 생활하는 장애 아동들의 환경 때문에 외부로 쉽게 드러나지 않은 채 장기간 저질러졌다.

끔찍한 인권 실태들

올해 3월 서울의 한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시설장이 쇠자와 몽둥이로 장애인을 폭행하고, 장애수당을 가로챈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지난해 경기 고양시에서는 29명의 장애인들이 상수도와 냉난방 시설도 없는 곳에서 생활하며 야간노역에 동원됐다. 또 경기 화성시에서는 시설장이 장애인을 폭행하고, 일부 장애인들은 결박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성 장애인들간 성추행도 발생했다. 2009년 목포에서는 생활교사가 장애인을 성폭행하고, 후원금을 횡령하고, 장애인들에게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중증장애인시설들이 후원금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장애인들이 엉덩이를 보이며 목욕하고 있는 사진 등을 광고처럼 내건 일도 있었다.

감금ㆍ폭행만 없으면 폐쇄 안돼

그나마 폭행ㆍ감금 등의 혐의가 드러난 경우는 폐쇄처분이 내려지기도 하지만, 교묘한 인권유린에는 당국도 거의 눈감기 일쑤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의 송효정 활동가는 지난해 민관합동으로 미신고 장애인생활시설을 조사할 때, 안동에 있는 한 시설이 하루 세 번 예배에 참여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송 활동가는 "지자체에 '그 시설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니 '문제가 있었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경기 평택에 있는 한 시설은 조사단이 찾아갔을 때 후줄근한 체육복을 입은 노인들이 빵 한 조각과 탄산음료 캔 하나씩을 받아 들고 먹고 있었다. 오전 10시30분이었는데 그게 점심이었다. 송 활동가는 "그 시설도 문제 없는 것으로 결론 냈다가 방송 보도가 되면서 폐쇄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사를 해도 조치가 제대로 안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시설 폐쇄시 장애인들을 이동시킬 다른 시설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미인가 시설이 10개로 줄었다고 한 데 대해 송 활동가는 "지자체가 축소 보고한 것"이라고 했다.

격리시설 대신 근로ㆍ자립지원을

김현수씨는 부모가 시설로 보내려 하자 가출해 거리에서 자고 노숙하는 아저씨에게 밥을 얻어먹었지만 시설보다는 나았다고 했다. 다시 시설에 들어간 후 몇 달은 뭘 먹고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극심한 우울증을 겪은 것이다.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을 격리하는 생활시설을 줄이고 선진국들처럼 주간보호시설, 근로시설, 자립지원을 확대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인가된 생활시설에 들어가는 장애인에게는 정부가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하지만, 시설을 나와 자립하려는 장애인에게는 지원금이 끊기는 것도 문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자립 장애인에는 활동서비스 지원 등의 별도 지원 정책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내년부터 신규 생활시설은 30인 이상 수용하지 못하도록 법이 개정된 것이다. 수용인원이 많을 수록 인권유린 및 서비스 질 저하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89개 시설이 100명 이상씩을 수용하고 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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