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는 완전히 다 열린 것일까. 부산저축은행그룹 로비스트 박태규(71)씨의 정ㆍ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 김두우(54)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27일 구속됨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가 어떻게, 어디까지 전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검찰 주변에서는 김 전 수석 구속으로 사실상 이번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28일 박씨의 자진귀국과 함께 이 부분 수사를 본격화한 대검 중수부는 박씨의 로비 형태를 '단선(單線)' 구조로 파악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를 위해 문어발 식으로 여러 사람을 접촉했다기보다는, 김 전 수석 한 명한테 집중했다고 본다는 뜻이다.
실제로 박씨가 벌인 로비의 종착역이 김 전 수석이라면, 이제 김 전 수석의 '2차 로비' 대상을 밝혀내는 문제만 남아 있는 셈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도 머지 않아 끝날 수 있다. 중수부는 10월 중 부산저축은행 관련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수사가 미진한 나머지 부분은 최근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에 넘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박씨가 오로지 김 전 수석만을 로비의 '타깃'으로 삼았다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부산저축은행 측은 정ㆍ관계 로비 청탁을 위해 지난해 4~10월 박씨한테 총 10차례에 걸쳐 17억원을 건넸다. 단순히 김 전 수석 1명이 로비 통로인데도 이렇게 여러 번에 걸쳐 거액을 받아갔다고 보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게다가 김 전 수석이 박씨한테 로비 대가로 받은 금품은 1억1,000만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17억원 중에서 2억원을 올해 2월 중순 김양(59ㆍ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그룹 부회장한테 돌려줬고, 5억여원은 자택과 개인 금고에 보관해 둔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로비 자금 9억원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로비 자금의 용처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 한, 박씨의 로비가 김 전 수석한테 집중됐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박씨가 광범위한 인맥을 갖고 있으며, 부산저축은행 퇴출설이 흘러나오던 무렵 다수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접촉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박씨는 지난해 한나라당 안상수 전 대표나 김경한 전 법무부장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과 술자리 또는 골프 회동을 가졌다. 물론, 단순히 박씨와 만났다는 점만 갖고 이들이 박씨의 로비를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검찰도 "전화 통화를 했다거나 함께 골프를 쳤다는 이유만으로 조사할 수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박씨가 이들을 상대로 부산저축은행 구명 청탁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해 검찰로선 그냥 지나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때문에 검찰 수사가 이 정도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히 살아있다. 특히, 현 정권의 '그림자 실세'라 해도 김 전 수석만을 사법처리하고 사건을 종결한다면 지난 6월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수사기능 폐지 요구에 맞서면서 "수사로 말하겠다"던 대검 중수부의 이름값이 무색해질 수도 있다. 검찰은 현재 박원호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박씨한테 금품을 받은 정황은 포착했지만, 대가성을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해 소환 여부 등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수사의 관건은 결국 박씨의 '입'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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