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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중기적합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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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중기적합업종

입력
2011.09.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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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는 모든 경제주체가 '합리적'이라는 기본 가정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 건 공리주의(功利主義ㆍutilitarianism) 철학의 원조인 제레미 벤담(1748~1782)이라고 한다. 그는 쾌락(이익)을 추구하고 고통(손해)을 피하는 게 인간 본성이므로 행위의 합리성 역시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 이기적 목표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봤다. 이기적 선택이야말로 경제적으론 최고의 가치가 된다. 문제는 그 합리적 선택이라는 게 선이나 정의 같은 윤리적 가치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진출은 기업의 이기적 이익 추구가 사회정의와 충돌하는 대표적 경우이다. 돈이 된다 싶은 사업마다 대기업이 손을 뻗친다면 중소기업은 생존의 토대를 잃게 된다. 일관제철공장과 중공업시설을 갖춘 거대기업이 베어링공장을 차리면 소규모로 베어링을 생산해 온 중소기업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철강재 조달이나 기술 개발, 자본력에서 경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중소 베어링공장이 공유했던 이익은 거대기업에 집중되고, 중소기업 직원들이 직장을 잃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진다.

■ 대기업의 무분별한 업종 확장의 부작용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가 중소기업 업종에 진출하지 못하게 직ㆍ간접적으로 제한해 왔다. 우리나라도 1966년 제정된 중소기업기본법에 업종보호 취지를 처음 반영했다. 이어 박정희 정권 말기인 79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를 도입해 대기업의 중기 고유업종 진출을 막기 시작했다. 93년엔 싱크대 등 237개 품목이 지정되기도 했다. 이 '보호막'으로 인한 독과점, 경쟁 저하 등의 부작용이 커져 노무현 정부가 2006년에 제도를 폐지하자 대기업의 문어발식 진출이 재개돼 재생타이어부터 된장 고추장에 이르기까지 또다시 대기업 판이 됐다.

■ 그제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중기 고유업종제의 취지를 되살린 것이다. 1차로 세탁비누와 순대, 장류 등 16개 품목이 꼽혔다. 대기업은 해당 사업을 중소기업에 넘기거나 진입을 자제하거나 사업규모 확장을 자제하는 등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강제력이 있던 중기 고유업종에 비해 중기 적합업종은 민간 합의에 불과한 게 문제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첨예한 이해갈등을 빚은 두부 내비게이션 LED조명 등의 업종이 빠진 건 제도적 한계를 극명히 보여 준다. 기업의 '합리적 선택'을 '정의론'만으로 제어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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