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3월24일) 초기,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사외이사인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우리은행은 기업금융을 주력으로 삼아왔는데, 지난 10년간 외환위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무려 3번이나 대규모 부실이 났습니다. 또 다시 위기의 징후가 짙어지고 있는데, 이젠 우리은행도 기업금융을 줄여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 행장 스스로가 기업금융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인이라 기업금융을 축소할 수도 없고 축소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자문이라기 보다는 본인의 소신을 확인하고 싶은 것에 가까웠다. 이 전 위원장의 답변은 이 행장의 예상대로였다. "우리은행마저 기업금융을 꺼리면 누가 맡겠습니까.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하겠지요."
이 행장은 취임 6개월을 맞아 26일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본점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기업금융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했다. 다른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기피하고 가계대출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는 "은행 입장에서 보면 가계대출은 어지간해서는 손해 볼 일 없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장사"라며 "하지만 기업대출은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 대규모 부실로 번질 수 있는 만큼 상당한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랜 기간 기업의 돈줄 역할을 해온 우리은행마저 책임을 회피한다면,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산업 현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취임 초부터 현장 경영을 강조하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선 현장을 뛰어다니는 것도 이런 책임감의 발로였다.
6개월 남짓 행장으로서 한 일중 그가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달 초 금융업계 최대 수준(85명)의 고졸 신입행원 채용이었다. 단순히 채용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본인 명의로 이들 가정에 축하난을 보내고 연수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기대 이상으로 뛰어난 이들이 많더군요. 단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을 뿐이죠. 처음에는 우리 사회의 학력 인플레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접근했는데 이제는 사회 양극화 해소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행장은 향후 이들에게 야간대학 진학 기회를 부여하고 10~15년 경력 직원을 멘토로 연결해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요즘 우리은행 노조는 우리금융지주의 카드 부문 분사와 매트릭스 조직(사업부문 단위 조직) 도입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내에서 우리은행의 역할과 위상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이에 대한 이 행장의 답변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자칫 우리금융과의 갈등으로 비춰질 경우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인 듯 했다. 이 행장은 "카드 분사든 매트릭스 조직이든 최적의 조직 체계를 찾아나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봐 달라"며 "우리금융지주 측이 현재의 단점을 보완하는 최선의 방안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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