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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청춘'을 노래하는 그들,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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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청춘'을 노래하는 그들, 참 아름답다

입력
2011.09.2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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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쯤에 노인들의 미디어 이용에 대한 연구를 했다. '노인과 바다' 이후 노인을 주제로 한 최대의 작품이라며 공동연구를 한 선생님과 농담삼아 이야기 한 '노인과 미디어'가 책 제목이 되었다. 노인들은 현실사회에서 소외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적 현실을 재구성하는 미디어에서 역시 소외되고 배제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연구였다. 노인 관련 미디어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반면, 노인들의 일상에서 TV와 같은 미디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났다. 노인들에게 TV는 또 하나의 가족이자 친구이고 애인 같은 존재였다.

지난 주말에 TV에서 예능프로그램들을 보다가 많은 노인들을 만났다. 예전엔 상상조차 못했던 주말 황금 시간대에 노인들이 등장했다. 엑스트라나 방청객의 한 사람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우리가 노인들을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 혹은 노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시청자들 대다수가 자고 있을 주말 아침 6시에 방송되는 '언제나 청춘(KBS2)'이나 '늘푸른 인생(MBC)'정도다. 노인들을 위해 관심을 가져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이지만, 노인들만 달랑 보는 혹은 노인들도 잘 보지 않는(칠순이 넘은 친정엄마와 팔순을 바라보는 친정아버지는 이런 프로가 있는지도 모른다) 프로그램 밖에 없다.

내가 주말에 본 프로그램에서 노인들은 '청춘'을 노래하는 '합창단'이었고, 젊은이들과 어울려 111명의 '가족'을 구성하는 어르신들이었다. '청춘'을 노래하는 '합창단'의 평균 연령은 62세라고 했다. 아직 방송은 되지 않았지만 가요제 은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청춘합창단을 뽑는 오디션을 재방송으로 접했을 때부터 난 가슴이 먹먹했다. 자식들을 위해, 생활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많은 사연들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났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 속에서 노인들은 젊게 빛났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1세부터 102세의 시청자들을 모아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에도 많은 노인들이 나왔다. 인기 최고의 프로그램에서 유명 연예인들과 여행을 한다는 기쁨에 설레는 노인들은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였고,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102세 할아버지 옆에서 90대 할머니는 소녀 같은 누이동생이었고, 80대 할아버지들은 청년이었다.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우리의 모습이었다.

지금껏 미디어에서 보여 준 노인의 이미지는 보호와 치료의 대상, 고집스럽거나 주책 맞은 늙은이, 표독한 시어머니에 이르기까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런데 주말에 내가 본 프로그램 속에서 노인들은 요즘 오디션 무대에 서는 젊은이들처럼 노래 부르고 싶어하는, 못다 이룬 꿈을 아쉬워하는, 예능프로그램을 똑같이 즐기는 청춘이었다. 마음만 청춘이 아니라 꿈과 도전, 열정 모두에서 진정 청춘이었다.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보험회사에서 보내 준 내 책상 위 탁상달력을 들쳐보니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모든 기념일들이 빠지지 않고 표시되어 있는데 노인의 날은 없다. 달력을 만든 업체의 실수였겠지만, 어린이날을 기억하듯 노인의 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다. 물론 노인의 날 하루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춘'을 뒤로 했으나 아직도 '청춘'이고 싶은 노인을 존경하고 함께 하려는 우리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TV에서도 노인들만 따로 국밥 만드는 프로그램 말고, 노인과 더불어 함께 하는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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