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나무패널을 격자로 맞춘 흉상이 전시장에 세워졌다. 언뜻 멋스러운 책장 같지만 빈칸을 차지한 것은 각기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 30대의 전자액자다. 서울 신사동 예화랑의 미디어 아트 그룹전시 '빅 액티브 : 미디어 아트 쇼'(10월 13일까지)에서 선보인 뮌(Mioon)의 '멘쉔스트롬(전기인간)'이다.
서른 아홉 동갑내기 부부 김민선, 최문선씨로 구성된 뮌은 주목 받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현재 열고있는 국내 전시만 3개, 10월 초 독일에서 열리는 '제3회 라이트 프로젝션 비엔날레'에도 초청됐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는 연이은 전시로, 한두 달에 한 번은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독일 유학 중 만나 2001년부터 뮌으로 공동작업을 해오다 부부의 연까지 맺은 그들. 10년째 화두로 삼는 것은 '도시 군중'이다.
"개인이 군중을 구성하는데, 그동안 군중을 거시적이고 피상적으로 본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들을 좀 더 깊숙이 관찰하기로 한 거죠. 관음증을 소재로 한 히치콕 영화 '이창(rear window)'이 힌트가 됐어요. 개인의 좌절과 욕망, 희망을 한 방에서 보이게 했습니다."(김민선씨)
문보다 큰 사다리를 밖으로 내가려다 번번이 실패하며 시시포스 신화를 연상시키는 한 남자, 아들에게 쉼 없이 말하는 늙은 아버지와 듣지 않는 젊은 아들로 대변되는 세대 간의 갈등, 빈 의자 앞에서 기나긴 연설문을 읽는 여성에서 보여지는 젠더 문제까지. 각 10분 분량의 영화 속엔 인간의 숙명과 우리 사회 면면이 담겼다.
"시나리오 구성만 석 달이 걸렸어요. 배우, 촬영팀, 미술팀을 섭외해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5일간 촬영했어요.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담았죠."(김민선씨) 총 88편의 영화가 제작됐지만 이번 전시엔 30편만 공개했다.
'군중 깊숙이 보기'의 연장선에서, 뮌은 '기억극장' 연작도 시작했다. 이미 완성된 인트로 작품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고별인사가 반복 재생되는, 1996년에 대한 뮌의 기억이다. 다음 작업을 위해 관람객을 상대로 특정 인물과 이슈에 대한 인터뷰도 진행한다. 인트로 작품은 서소문 일우스페이스(10월 12일까지)에서 전시 중이고, 관객 인터뷰는 파주출판단지 메이크샵 아트스페이스(10월 16일까지)에서 진행하고 있다.
"특정 시점에 대한 기억이 비슷한 맥락으로만 구성되진 않는 것 같아요. 서태지의 은퇴, 문화적 팽창, X세대의 등장으로 기억되는 1996년은 학생운동이 사라진 시기이기도 하죠."(최문선씨) 자신들의 기억으로 첫 작품을 시작한 이들은 "앞으로 대중의 파편적이고 이질적인 기억을 통해, 군중을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를 발견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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