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물가가 치솟는데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 악화로 인해 기준금리를 올리기 힘든 딜레마에 빠지면서, 지급준비율(지준율) 인상이나 총액한도대출 축소 등 대체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들끓고 있다. "금리를 못 올리겠다면 물가를 잡기 위해 뭐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적고,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혜훈(한나라당) 의원은 28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수 없다면 물가를 잡기 위해 지준율이라도 올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전날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한은이 금리 결정만 하는 곳이냐, 지준율 등 다른 수단이라도 검토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지급준비금은 금융회사가 고객의 지불 요구에 대비하기 위해 예금의 일정비율(지준율)을 쌓아두도록 한 제도. 한은이 지준율을 높이게 되면 은행의 대출 여력 감소로 시중 유동성이 줄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중소기업 대출 실적과 연계해 은행들에게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총액한도대출을 축소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비슷하다. 특히 금융통화위원 중 대표적 비둘기파인 강명헌 위원은 그 동안 금리 인상에는 반대를 하면서도 유동성 억제를 위한 수단으로 총액한도대출 축소를 강력히 요구해 왔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통화량 목표제에서 물가안정 목표제로 전환하면서 기준금리를 운용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지준율을 높이면 당장은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지 몰라도, 이 때문에 시중 금리가 한은이 정한 기준금리보다 높아진다면 한은은 금리를 낮추기 위해 통화안정증권 회수 등을 통해 다시 돈을 풀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물론 '지준율 인상 →은행 수익성 악화 →대출금리 인상 →자금 수요 감소 →유동성 축소'로 이어질 수는 있겠지만, 이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강도 역시 미미하다는 것이 한은의 판단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리 운용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준율 등 양적 관리수단은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권 반발도 현실적인 장벽이다. 당장 예금 외에 은행채에도 지준을 부과하겠다고 하자 은행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마당에, 지준율까지 인상하고 나서면 은행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지준 부담이 없는 2금융권과 은행간 불공정성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리 딜레마가 지속된다면 한은도 양적 관리 수단을 계속 외면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한은 고위 인사는 "직접적인 효과가 없더라도 시장에 유동성 억제 의지를 보여주는 효과라도 있다면 검토는 해봐야지 않겠느냐"고 여운을 남겼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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