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에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은 여론의 지지와 방향이 다른 의제(어젠다)를 설정해 이를 끌고 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론조사회사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OSI) 연구원을 지낸 한귀영 박사(행정학)는 27일 낸 (폴리테이아 발행)에서 두 대통령이 제기한 핵심 어젠다와 그 어젠다에 대한 여론의 지지율을 비교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 박사는 연설문 등으로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내용 가운데 구체적 법안의 형태를 띠거나 대안을 담은 정책적 제언을 어젠다로 간주했다. 이 어젠다를 내용에 따라 ▦정치ㆍ행정 ▦경제ㆍ사회 ▦외교ㆍ통일ㆍ국방으로 나누고, 어젠다를 제기한 방식에 따라 갈등형과 타협형, 동원형과 반응형으로 구분했다. 갈등형 어젠다는 자신의 지지층을 위한 어젠다이고, 타협형은 국가수반으로서 제기하는 중립적인 어젠다를 말한다. 동원형은 대통령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어젠다인 반면, 반응형은 소극적인 어젠다를 뜻한다.
이 같은 분석틀로 노 전 대통령의 어젠다를 추려낸 결과, 행정수도 이전, 언론개혁 등 가장 정력을 쏟았던 정치ㆍ행정 분야에서는 갈등형 28회, 타협형 11회로 지지층을 위한 정책이 2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KOSI가 실시한 수십 차례의 설문조사에서 어젠다 관련 항목의 지지율은 갈등형이 53.3%, 타협형이 55.9%로 오히려 타협형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이같이 어젠다와 여론의 지지가 어긋나는 현상은 정권 운영에 가장 의욕적인 임기 초반에 더욱 두드러졌다. 한 박사는 "임기 초반에 노 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끌고 간 동원형 어젠다는 모두 정치ㆍ행정이었고 경제ㆍ사회는 전부 소극적인 반응형 어젠다로 이에 대한 준비가 충분치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임기 초반의 여론 지지율은 경제ㆍ사회가 55.0%, 정치ㆍ행정은 51.5%로 경제ㆍ사회 쪽이 더 높았다. 정치 개혁도 중요하지만 여론은 경제 문제의 대안을 제시해 주기를 더 바랐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의미다. 특히 동원형 어젠다의 경우 지지층보다 반대층을 결속시키는 효과가 더 커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명박 정권은 임기 초반 정치ㆍ행정 어젠다보다 경제ㆍ사회 비중이 높았다. 어젠다 유형별로는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갈등형과 대통령이 주도하는 동원형 어젠다의 비중이 모두 높았다. 하지만 힘을 쏟은 경제ㆍ사회 분야의 경우 갈등형 어젠다에 대한 지지(38.1%)는 타협형(41.0%)보다 낮았다. 특히 이 대통령의 어젠다에 대한 지지는 내용과 무관하게 대체로 40% 이하로 노 전 대통령에 비해 10% 포인트 정도 낮았다. "기존의 보수 정당 체제의 틀 내에서도 더 보수적인 노선을 지향했기에 다수 대중을 포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 박사는 "이 대통령의 경우 갈등형 어젠다를 끌고 가 특정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지지층 가운데 서민 보수층과도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더 포용적이고 타협적인 어젠다를 제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경우도 동원형 어젠다가 반대층을 결속시키는 효과가 더 높게 나타나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한 박사는 이어 "내년 대선은 양극화에 따른 민생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초점"이라며 "소수파로서 진보 진영은 정체성을, 다수파로서 보수 진영은 중도 강화 전략을 내세웠을 때 외연 확대는 물론 정권 창출도 가능했다는 것이 과거 대선의 경험"이라고 덧붙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