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대통령 재임 8년 간 줄곧 70~80% 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지난해 퇴임한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을 제외하면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는 구 소련 붕괴 후 정치ㆍ경제적 혼란으로 국가 파산 상태에 있던 러시아를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의 집권 기간에 GDP는 4배, 외환보유액은 10배, 수출 3배, 주가지수는 12배나 증가했다. 경제력을 발판으로 과거 소련이 누린 군사대국의 위상 회복을 꾀하기도 한다. 강한 러시아 건설을 외치는 푸티니즘(Putinism)에 러시아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하다.
■ 주요 에너지와 전략산업의 국영화를 통한 그의 경제개발 방식은 1960~70년대 박정희의 경제 발전전략과 유사하다. 실제로 박정희를 벤치마킹했음을 뒷받침하는 일화도 있다. 1990년 레닌그라드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총장 국제문제보좌관 시절, 이석배 주 카자흐스탄 공사에게 "박 대통령에 관한 책이 있으면 한국어든 다른 언어로 쓰였든 모두 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과단성 있게 밀어붙이는 리더십도 닮았다. 하지만 그는 장기집권의 길을 열기 위해 3선 개헌의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 대신 정치적 부자관계라고 할 수 있는 후계자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총리로 물러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적 길을 택했다. 총리 재임 중에도 그의 인기는 여전하고 막강한 권력 행사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그가 최근 집권여당 전당대회에서 내년 대선 후보로 공식 추대됐다. 오래 전부터 예상된 일이라 놀라는 사람들도 없다. 그의 크렘린궁 재입성을 막을 장애물도 없다. 무엇보다 그의 강한 러시아 건설 구호에 빠져 있는 러시아국민들이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는다.
■ 푸틴이 내년에 크렘린궁 재입성에 성공하면 구소련 시절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브레즈네프와 스탈린에 버금가는 장기집권의 길이 열린다. 이미 8년 간 대통령직을 수행한 그가 6년으로 늘어난 대통령직을 연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존경한다는 표트르 대제처럼 21세기의 차르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서방 세계는 정치적 부자지간에 대통령직을 주고받는 후진적 정치적 담합에 어이없어 한다. 러시아의 정치현실을 반영하는 러시아식 민주주의로 이해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 논리도 없지 않다. 장기집권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진리에서 푸틴이 예외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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