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고등교육정책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학평가 지금까지 많이 해왔지만 대학별 특성을 고려한 평가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학 구조조정을 수행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에게 대학 총장과 총학생회장들은 이렇게 반문했다. 구조개혁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시행과정은 너무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라는 것이다. 26일 이 장관은 국공립대 총장단, 전국총학생회장단과 잇따라 간담회를 갖고 스킨십을 늘렸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전에 이 장관을 만난 38개 국립대 총장들은 무엇보다 정부가 대학이나 지역의 특성을 무시한 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최근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 5개교에 포함된 강원대 권영중 총장은 “구조개혁대학 발표는 졸속”이라며 “재학생 충원율 등 일부 지표는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학생 충원이 쉽지 않은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군산대 채정룡 총장 역시 “전북 지역은 모든 지표가 타 시도에 비해 낮아 학교의 노력만으로 취업률 등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며 “정부가 먼저 지역출신자를 배려한 취업할당제 추진 등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전체 학교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면 지표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이는 정부가 독려하는 최저기준 수준”이라고 답했다.
오후에는 이 장관과 전국총학생회장단 소속 총학생회장 13명과 간담회가 열렸다. 신호규 상명대 총학생회장은 최근 상명대가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 “대출금 상환 비율도 평가지표가 됐는데 가난한 학생이 다니는 대학은 부실대학인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둔 대학, 사학비리에 연루된 대학은 명단에 전혀 없고 획일적 지표로만 대학이 선정됐다. 결국 부실대학생 낙인을 받은 학생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유기섭 강원대 총학생회장은 “강원대를 구조개혁 중점추진 대학으로 선정하기 전 관련 서류를 몇 장이나 검토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객관화된 지표를 기반으로 평가했다는 답이 돌아오자 그는 “대학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고려도 없이 몇 개의 숫자로서 부실대학 낙인을 찍는 것은 성급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탁상행정”이라며 “모두가 반대하는 국립대간 통합을 정부가 압박해놓고 이제와서 학교 운영결과에 대한 책임은 대학에 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 장관은 총학생회장단에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국립대 경우에도 페널티를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컨설팅 등을 지원해 더 빨리 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답했다. 그는 국립대 총장들에게는 “현장에서 ‘정권 후반기 소나기를 피하며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있다고 들었다”며 “일회성이 아니라 퇴출 시스템 자체를 정착시키겠다”이라며 대학 구조개혁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