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동자는 나의 것.
눈썹을 깜박이는 것도 나의 의지입니다.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보는 것도 나의 의지
내 손은 나의 것.
담배를 피우거나
비벼 끄는 것은 나의 의지입니다.
연기가 피어올라 공중으로 사라져가듯.
나의 말은 나에게서 나와
당신에게로 흘러 들어 갑니다.
당신이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어느 날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나는 거리로 나갑니다.
어느 날 가로등들이 꺼졌다 켜졌다 하듯이
당신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나는 쏟아지는 불빛을 거리에서 맞습니다.
나의 의지는 나만의 것이지만.
* * *
배가 아주 많이 고픈 당나귀가 있었어요. 운 좋게 커다란 건초더미를 두 개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똑같은 거리에 있는 거예요. 이 바보 당나귀는 가운데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결국은 굶어 죽었대요. 이 이야기는 철학자 뷔리당이 인간의 자유의지의 무력함을 조롱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군요. 모든 조건이 똑같고 우리가 오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순간에, 우리는 생각만큼 의지를 잘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시인의 속마음도 뷔리당과 비슷해요. 나의 의지는 나만의 것이다. 나는 맘대로 눈동자를 깜박이고 담배를 피우고 내 맘대로 거리로 나간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나의 의지란 얼마나 무력한가요. 사실 나를 거리로 나가게 한 것은 거리에서 만난 나를 어쩌면 당신이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이렇게 계속 담배를 피우도록 만드는 건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 당신. 내 인생은 우두커니 불빛을 맞고 서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자꾸 껐다 켰다 해대는 감정의 가로등에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쏟아지는…. 시인
하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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