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한도는 두 권, 대출 시간은 40분. 인신공격과 함부로 만지는 건 금물. 독서 후엔 훼손하지 말고 빌린 그대로 반납.'
일반책이 아닌 '사람책' 얘기다. 24일 오후 서울 마포에 있는 복합 문화공간 살롱 드 마랑에서는 '사람책'을 빌려주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행사 이름은 '숨쉬는 도서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듯이 '사람책'과 독자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색다른 방식의 소통이자, 재능기부 자리이기도 하다. 덴마크의 한 시민단체에서 처음 기획한 '휴먼라이브러리'가 우리나라에도 선을 보인 것이다.
'청년에게 딴짓을 권한다'는 주제로 열린 행사엔 20~30대 40여명이 찾아 '살아있는 책'들을 빌려 읽었다.
'상상력의 도착, 영화를 이야기하다'라는 제목의 사람책은 영화 '체포왕'의 임찬익 감독이었다. 그는 독자들에게 "영화감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재능을 스스로 의심하고 경제적 어려움 같은 현실적 문제 때문에 많이 망설인다. 나도 내 영화 찍기까지 10년 걸렸다"고 운을 뗐다. "그럴 땐 골방에서 고민만 하지 말고 현장에서 소품을 나르든지, 동네 문화센터에서 짧은 영화를 한 번 만들어 보든지 하면서 일단 부딪혀라"고 조언했다. 영화감독을 꿈꾼다는 여대생 조수진(21)씨가 "여성 감독이 남성 감독보다 불리한 점이 많은 것 아니냐"고 묻자 임 감독은 단박에 궁금증을 해소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카리스마는 큰 목소리나 강한 성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작품을 꿰뚫는 작품 장악력에서 나온다. 걱정할 것 없다."
이번엔 "개성이 뚜렷한 잡지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황연주 이든디자인 대표 차례. 그는 "남들 눈치를 보며 살지 말라"고 독자들에게 일갈했다. 소품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목수 일도 하고 있는 그는 "나는 목공 일에 필요하다면 드라이버 하나도 50만 원짜리를 쓰지만 차는 작은 차가 좋아 경차를 탄다. 치마가 편해 입고 다닌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면서 살면 불행하다"고도 했다. 황씨가 '대기업 입사를 포기했던 과거', '창피해 죽고 싶었던 실수' 등 인생의 중요한 지점들을 솔직하게 꺼내든 대목은 대화의 하이라이트였다. 그의 독자로 참가한 직장인 정모(33)씨는 "뚝심 있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책'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무기력한 직장 생활이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숨쉬는 도서관'행사엔 지방자치단체의원, 출판사 대표, 중학교 국어 교사, 요가 강사, 만화가 등 15명의 다양한 '사람책'들이 함께했다. 행사를 주최한 민중의 집 측은 "목표는 '숨쉬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무너진 동네 커뮤니티를 복원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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