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 국가들보다 경제체질이 훨씬 튼튼하다는 한국의 금융시장이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3년 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3,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이 우리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리먼 사태와 같은 충격이 올 경우 외환보유액 1,000억~2,000억달러 차이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을 기본 안전판으로 삼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플러스 알파'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2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1,000억달러 이상 늘어난 3,122억달러(8월 말 기준)에 달한다. 여기에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외채 비중도 3년 전(2008년 9월 51.9%)보다 크게 낮아졌다(올해 6월 37.6%). 정부가 이번 위기를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감안하면 우리 금융사들의 건전성은 양호하다"고 단언했다. 지난주 말(23일) 환율 방어에 35억달러 이상을 한꺼번에 쏟아 부은 배경에도 '넉넉한' 외환보유액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외환보유액만으론 안심하기 이르다는 우려도 높다. 그리스 채무불이행(디폴트),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와해, 미국의 더블딥(이중침체) 같은 대형 악재가 겹쳐 전세계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돈을 회수하고 나선다면 3,000억달러의 외환 실탄은 순식간에 바닥날 수도 있다. 실제 국가부도 위험을 의미하는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3일 뉴욕시장에서 2.02%로 최근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맞은 프랑스(1.97%)보다 더 높아졌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연구위원은 "지금의 3,100억달러는 당장 국가 부도를 막는 데는 유효하지만 시장 불안까지 잠재울 수준은 못 된다"면서 "신용위기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주식ㆍ채권 투자액의 20%(약 1,000억달러)만 빠져나가도 현 보유액은 700억달러 이상 모자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환율 불안을 막을 추가적인 안전판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추가 대책으로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달러와 원화 맞교환)를 먼저 꼽는다. 2008년 외환위기 우려를 진정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스와프 라인을 미국과 다시 개설하고, 이미 300억, 100억달러가 체결중인 중국ㆍ일본과도 한도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스와프 체결 노력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진 선진국 국채자산 등을 무기 삼아 사전 물밑 협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의 해외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제2의 외환보유액'을 쌓고 ▦금융당국이 해외 투기세력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보내며 ▦정치권과 정책당국이 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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