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의 강제적 성관계를 강간으로 봐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가 부부간의 강간죄 성립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대법원이 향후 어떤 판단을 내릴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법원은 장기간 별거하는 등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 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부 사이의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부장 최상열)는 흉기로 아내를 찔러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후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된 A(40)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형법상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는 이상 법률상 처가 당연히 강간죄 객체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 없다”며 “부부사이에 성관계를 요구할 권리는 있다고 하더라도 강제로 성관계를 할 권리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부부 사이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와 침해여부는 제3자에 대한 경우와 동일하게 볼 수 없어 강간죄의 성립은 혼인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번 판결에 앞선 2009년 부산지법은 1심에서 처음으로 부부간 강간죄 성립을 인정한 판결을 내놓았지만, 피고인의 자살로 2심에서 공소 기각됐으며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은 또 다른 사건에서 부부간 강간죄를 인정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지만, 피고인이 항소이유서를 기간 내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부가 강간죄 성립의 객체가 되는지에 대해 직접적인 법적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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