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의 대규모 달러 살포에 환율이 닷새 만에 하락했다. 장 마감 직전 수십억 달러가 시장에 풀리면서 30원 가까이 끌어내린 '초강력' 개입이었다. 세계 경제의 위험 신호가 커지고 있어 정부의 환율 막기 총력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2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가 장 마감 10분 전 1,195.3원까지 치솟았지만 '1,200원선돌파'를 막기 위한 정부 개입 물량이 쏟아지면서 전날보다 13.8원 내린 1,166원으로 마감했다. 하루 변동폭이 46원에 달할 정도로 환율 널뛰기가 심했다.
정부는 이달 들어 네 차례 구두개입이 반짝 효과에 그치자 직접 물량 살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날 오전 긴급 거시정책협의회를 열고 "최근 과도해진 외환시장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외환당국이 매도 개입에 나서면서 환율은 개장 1분 만에 1,195원에서 1,150원대로 급락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증시에 이어 국내 증시가 장중 5% 넘게 폭락하며 환율 상승 압력을 키워 1,200원 목전까지 치솟자, 정부가 대규모 달러를 시장에 매도하며 환율을 30원 가량 끌어내렸다. 시장 관계자는 "장 마감 직전 정부에서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 매물이 35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하루 50억달러 가량을 내다 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앞서 정부는 15일 환율이 장중 1,150선을 넘어서자 은성수 국제금융국장이 구두개입에 나섰다. 금융위기 이후 1년5개월 만이다. 20일 환율이 다시 큰 폭으로 오르자 이번에는 차관보급인 최종구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이 나서 급한 불을 끄긴 했으나, 환율은 이틀 후 29.9원 치솟아 1,150원선을 훌쩍 넘었다. 환율이 1,200원선 목전에 다가서자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에 출장 중인 박재완 재정부 장관이 22일 신제윤 1차관에게 "쏠림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금융시장을 예의주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 차례 구두 개입에도 환율 상승세가 멈추지 않자, 정부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따라 행동에 돌입한 것이다.
정부는 직접 개입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환율 방어에 나섰다. 재정부는 이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두산중공업 등 달러를 많이 벌어들이는 수출업체들을 불러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쌓아놓고 더 오를 때를 기다려 매도를 늦추는 '래깅'(Lagging) 전략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시장 혼란을 틈탄 투기세력의 달러 사재기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아직 투기세력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면서 "자본 유출입 변동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공조도 서두르고 있다. 박재완 장관은 미 워싱턴에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 셰쉬런(謝旭人) 중국 재정부장, 아즈미 준(安住淳) 일본 재무상과 연쇄 회동, 핫라인 구축 등 공조방안을 논의했다. 가이트너 장관과 만나서는 "선진국발 재정위기가 빠르게 전이되면서 한국 등 신흥국 환율이 대폭 절하돼 우려가 크다"며 국제공조 필요성을 역설했다.
서정훈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연구위원은 "환율이 10월 중 1,250원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유로존 위기에 대한 해법이 제시될 때까지는 중장기적으로 환율상승 압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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