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A중학교 3학년생 임모(15)양은 얼마 전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이란 주제로 열린 교내 과학탐구그림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덕분에 1학기 과학 과목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 하지만 임양이 그린 건 쓰레기 봉지 두 개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인터넷 대행업체에 15만원을 주고 집으로 부른 B대 미술 전공 대학생이 3시간 만에 그렸다. 임양은 "수행평가 할 시간에 시험 공부하는 게 내신에는 훨씬 이득"이라며 "사실 대회에서 상을 탈 자신도 없었다"고 말했다.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의 질적 평가를 하겠다며 도입된 수행평가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과도한 과제 부과형 수행평가로 학생 부담이 가중되면서 돈을 주고 대행시키는 학생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압구정동 C고교 2학년 김모(17)양은 "중간, 기말고사 때 모든 과목마다 있는 수행평가 과제를 제출하는 건 솔직히 엄청난 부담"이라며 "다른 것도 준비할 게 많아 반 아이들 중 한 절반 정도는 대행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인터넷 상에 공개된 수행평가 대행업체만 50여개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100% 성적, 상장 보장'이란 홍보 문구를 내세우며 과학에서 그림, 조립 등 모든 과제를 대행하고 있다. 한 대행업체 관계자는 "미술 과제는 한 장당 4만~4만5.000원에 거래되고 급한 사정이 있는 학생에겐 1만원 추가로 3일 이내에 작품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강남의 유명 학원들도 수행평가 대행에 나서고 있다. 학원강사 김모(22)씨는 "수강 학생들이 성적을 잘 받도록 원장이 학원 교사들에게 수행평가 참여나 대행을 요구한다" 고 전했다. 서초동의 D학원은 '학교와 학년을 파악해 수행평가를 처리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결과물이 겹치는 우려가 없다'고 선전했다. 학교에서 의심 받지 않도록 해당 학생이 실험에 참여한 사진도 찍어준다.
최근에는 과외 형태의 수행평가 대행도 성행하고 있다. 대학생 신모(22)씨는 시간당 1만5,000원을 받고 주5일 하루 3시간씩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미술 과제인 종이 오리기에서 금연을 주제로 한 글쓰기 과제까지 전 과목 수행평가를 대신 해서 모두 다 만점을 받게 해줬다"며 "요즘에는 과외를 구할 때 아예 학부모들이 수행평가 대행을 옵션처럼 내건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서울시교육청에는 수행평가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한 학부모는 최근 시교육청의 인터넷게시판에 "중학생 아이가 수행평가를 하느라 새벽 1, 2시에나 잠이 든다"며 "수행평가도 돈 있는 부모가 그렇지 못한 부모보다 훨씬 더 지원을 잘 해줄 수 있는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송우열 시교육청 학력장학관은 "일선 학교에서 과제형 중심의 수행평가에 치중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일선 학교에 개선안을 30일까지 보내달라고 공문을 보낸 상태"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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