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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영화 게시판에서 뜬금없이 정치 논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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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영화 게시판에서 뜬금없이 정치 논쟁 왜?

입력
2011.09.2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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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영화평론가 듀나가 운영하는 유명 영화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듀나게시판'((이하 듀게)은 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별명'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9일 트위터(@patriamea)을 통해 박 전 대표를 '발끈해(화를 잘 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로 지칭한 것에 반발한 커뮤니티의 한 회원이 조 교수의 확인되지 않은 과거를 사실인 양 들춰내며 조 교수를 공개적으로 비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조 교수는 곧바로 '듀게'의 정식 회원으로 가입, 허위 사실을 유포한 회원에 대해 "형사 고소를 할 수 있다"는 경고의 글을 남겼고 이후 100여 개가 넘는 댓글이 이어진 끝에 결국 문제의 회원이 조 교수에게 공식 사과를 하는 것으로 논란은 일단락됐다. 영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 게시판에 난데없이 정치적 공방이 거세게 몰아친 한 사례이다.

취미가 같은 네티즌들이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이 점차 정치 논쟁의 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소규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뤄진 정치적 논쟁이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다른 커뮤니티로 확산되기도 한다. 과거 인터넷 여론의 해방구 역할을 했던 포털 사이트 게시판들이 상업적인 홍보성 글과 특정 이념을 무차별적으로 강요하는 글들로 도배되면서 설 자리를 잃었던'인터넷 정치 논객'들이 점차 커뮤니티 사이트들에 둥지를 틀고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개설된 이후 국내외 야구 애호가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커뮤니티로 성장한 '엠엘비파크'도 최근 정치 관련 논쟁으로 게시판이 가득 차고 있다. 이 때문에 야구와 관련이 없는 게시물을 위한 별도의 '불펜(bull pen) 게시판'을 둘 정도다. 지난 주에는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 이후 내년 총선 지지 정당을 묻는 한국일보의 설문조사 결과를 놓고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야구 동호인들이 매일 경기 결과에 대해 촌평을 나누던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보수층을 지지하는 20대가 늘어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관련된 수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미 정부의 외교 전문을 공개해 전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위키리크스와 관련해서도 커뮤니티 사이트는 네티즌 논객들의 '멍석'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일 영상기기 동호회 사이트 'DVD 프라임'을 비롯한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이른바 '위키리크스 한국 관련 문서 번역 프로젝트' 링크(www.wikileaks-kr.org/dokuwiki/doku.php)가 일제히 게시됐다. 국내 언론이 현 정부 인사들과 관련된 외교전문 내용을 소극적으로 보도한다고 판단한 몇몇 네티즌들이 정치 논쟁이 활발한 커뮤니티 게시판을 이용해 직접 외교전문을 번역해 알리는 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정치와 무관해 보이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정치 관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 공론의 장이 부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장인 '아고라'를 비롯한 각종 게시판들은 기업과 정당 홍보의 장으로 퇴색한데다 인터넷 실명제 등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유로운 토론이 어려워진 반면 특정 관심사를 다루는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각종 커뮤니티에서 정치 관련 글들이 이슈가 되는 현상은 친목을 위한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주목할 점은 관심과 함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반면 정치 참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정권과 언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수록 소규모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글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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