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모씨는 8살 난 딸아이가 기침을 많이 해서 동네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감기약을 처방해줬다. 약을 먹고 나면 증상이 좀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기침이 잦아졌다. 그러면서 4주가 흘렀다. 혹시나 해서 다른 병원을 찾아갔는데 거기서는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했다. 천식이라는 진단이었다.
기침을 한다고 다 감기는 아니다. 천식일 가능성도 의심해 봐야 한다. 하지만 감기 환자가 기침만 하면 의사조차도 천식 환자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천식 진단과 치료를 위한 국제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우리 의료현장에선 지켜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쌕쌕거리는 소리로 천식 알아내
특히 어린 아이는 천식 진단이 까다롭다. 천식은 초기 진단 때 주로 문진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대신하는 답변이 객관적이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국제가이드라인이 미국에서 만들어진 천식예측지표(mAPI)다.
감기와 천식을 가장 확실하게 구분 짓는 것은 쌕쌕거림(천명) 증상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숨을 쉴 때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은 기도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천식을 의심해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mAPI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아이에게 4번 이상 천명이 나타났고 주항목 중 1가지 이상이나 부항목 중 2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천식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주항목은 ▲부모에게 천식이 있거나 ▲아이가 아토피질환이 있거나 ▲집먼지진드기 꽃가루 등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 부항목은 ▲우유나 달걀 땅콩에 알레르기가 있거나 ▲감기가 아닌데도 천명이 나타나거나 ▲피검사 결과 호산구(好酸球)가 증가한 경우다.
주항목에 아토피질환이 들어 있는 이유는 천식과 상호 유병률이 높아서다. 아토피가 있으면 없는 경우보다 천식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부항목에 있는 호산구는 혈액 속에 들어 있는 백혈구의 한 종류로 바이러스성 감염이나 알레르기 질환에 걸렸을 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천식 1차 치료제는 코로 들이마시는 약
다국적제약회사 GSK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천식 치료제 시장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건 먹는 약인 항류코트리엔제다. 처방되는 전체 천식 약의 약 26%를 차지한다. 항히스타민제를 비롯한 다른 성분까지 포함하면 먹는 약 비중이 60%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항류코트리엔제는 일반적인 알레르기성질환에도, 항히스타민제는 감기에도 처방되는 약이다. 이들 성분은 소화기로 들어간 다음 혈관을 통해 나와 치료 부위까지 전달돼 증상을 완화시킨다.
그러나 세계천식기구(GINA)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에선 천식의 1차 치료제로 먹는 약이 아닌 들이마시는 흡입용 스테로이드제를 권장하고 있다. 가루 형태의 스테로이드 성분을 호흡을 통해 치료 부위인 기도나 폐까지 곧바로 넣어주는 방식이다. 먹는 약보다 좀더 직접적인 치료법인 셈이다. 밤에 호흡곤란 때문에 잠을 깨거나 주 2회 이상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거나 가벼운 운동 같은 일상활동이 어렵다면 특히 흡입용 스테로이드제를 쓰라는 게 GINA의 권고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이 같은 국제학계의 권고를 충분히 따르지 못하고 있다. 한 의사는 "대다수 의사가 권고 내용을 알고는 있지만 한 환자를 진료하는 시간이 수분 정도에 불과하니 흡입제를 제대로 사용하도록 설명해줄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들이마시는 약보다 먹는 약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고,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런 이유로 치료가 늦어지면 결국 증상이 악화하거나 입원해야 하는 경우가 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손명현 교수는 "흡입용 스테로이드는 호흡기에서만 항염증작용을 하기 때문에 몸 전체로 흡수되는 양은 매우 적어 경구용 스테로이드 같은 전신 부작용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당뇨병 고혈압처럼 장기 관리해야
천식 환자들의 가장 흔한 실수는 증상이 있을 때만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증상이 일시적으로 잠잠해졌어도 꾸준히 치료를 계속해야 갑자기 악화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게 GINA의 권고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들이 꾸준히 인슐린 주사를 맞고 혈압약을 먹는 것처럼 천식도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어린 환자가 장기적인 관리를 제대로 못했을 경우 평생 건강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들어 속속 나오고 있다. 밤에 깊이 자지 못해 낮에 기억력이 떨어지고, 운동을 자주 못해 비만이나 과체중도 잘 생긴다. 우울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동맥경화나 심혈관질환 같은 성인병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5~2009년 전체 천식 환자 중 6세 이하 비율이 31.5%로 가장 높았으며, 7~12세와 60대가 각각 12.3%, 9.3%로 뒤를 이었다. 국내 19세 이하 천식 환자에서 약물 처방 비율은 35%에 불과하고, 그 중 흡입용 스테로이드를 쓰는 경우는 6~7%에 불과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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