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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프랑스 부르카 착용금지…서유럽국 중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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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프랑스 부르카 착용금지…서유럽국 중 처음

입력
2011.09.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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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 놓겠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볼테르(1694~1778)가 한 말로 알려져 있는 이 문구는 프랑스의 톨레랑스(toleranceㆍ관용)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유를 상징하는 프랑스 삼색기의 파랑색에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누구나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톨레랑스의 정신이 담겨 있다.

볼테르가 사망한 지 230여 년이 지난 지금, 톨레랑스의 대명사격인 프랑스는 역설적이게도 유럽에서 ‘불관용의 선두주자’라는 오명을 듣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서유럽 국가들 중 처음으로 무슬림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등 전통 베일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는 ‘불관용’을 법제화했기 때문이다.

“무슬림 여성은 가택 연금 상태”

힌드 아흐마스(32)는 최근 세 살 난 딸과 함께 길을 가다 낯선 사람들에게서 심한 모욕과 봉변을 당했다. 그가 입고 있던 니캅(Niqab) 때문이었다. 이를 처음 본 사람들은 “법으로 금지된 것 아니냐.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라”며 다짜고짜 그를 폭행했다. 아흐마스는 “베일 착용 금지 이후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며 “외출할 때마다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흐마스도 처음부터 무슬림은 아니었다. 6년 전만 해도 그는 전화여론조사 기관에서 일하며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평범한 직장 여성이었다. 뒤늦게 이슬람을 신봉하게 되면서 아흐마스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올해 1월 베일 착용 금지 논란이 한창일 무렵, 회사는 계약 연장을 해 주지 않았다. 이후 여기저기 새 직장을 구하러 다닐 때마다 베일 착용이 허용되는지 먼저 물어봐야 했다. 그때마다 “스카프 정도는 되지만 긴 옷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흐마스는 “딸 아이에게 바비 인형 같은 장난감조차 사 줄 수 없다”며 “이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아흐마스와 같은 고통을 겪는 프랑스 내 무슬림 여성은 수천 명에 달한다.니캅이나 얼굴을 가린 베일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거나 상점에 간다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다. 그렇다고 베일을 벗으면 신념을 스스로 배신하는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무슬림 여성들이 사실상 가택 연금 상태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유럽인권 정신에도 위배

프랑스가 부르카와 니캅 등 이슬람 전통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지난해 9월. 올해 4월부터 시행된 법은 공공장소 뿐 아니라 정부 청사, 대중교통수단, 시장, 영화관 등도 베일 착용 금지 장소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여성에게는 150유로(약 24만원)의 벌금과 시민강좌 수강 등 벌칙이 부과된다.

프랑스가 이 법을 도입하며 내세운 명분은 ‘테러 방지’와 ‘여성 인권 향상’. 그러나 기저에는 경제적 위기에 놓인 서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 이슬람 정서가 깔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부 여성 인권 옹호자들은 “부르카는 남성에게 예속된 여성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법 반대론자들은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자 이슬람 문화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4월)와 벨기에(7월)에 이어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 등이 비슷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어 이슬람 베일 금지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법의 실효성도 논란 거리다. 시행 이후 지금까지 경찰이 파리에서 니캅 착용을 이유로 단속한 것은 모두 100건이었으나, 벌금이나 시민강좌 수강 판결이 내려진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경찰도 니캅 착용에 많은 인력을 투입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처벌보다는 계도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프랑스 정부의 설명이지만, 인권 전문가들은 “개인적 자유와 종교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유럽인권조약과 모순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벌금을 부과하는 순간, 프랑스 정부는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법원에 제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가 쓸데없는 데에 에너지를 낭비해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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