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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어따 대고 존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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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어따 대고 존대야?"

입력
2011.09.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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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이런 판결이 있었다. 국정감사 자료를 요구하는 국회의원에게 욕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해임된 전직 마포구청 공무원이 해임처분 취소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전공노 부위원장이었던 그는 잦은 직장 이탈을 의심한 국회의원이 근무현황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부었고, 구청은 공무원의 품위유지 의무를 어겼다고 그를 해고했다.

법원은 결국 국회의원 편을 들어준 셈인데, 판결과 관계없이 국회의원의 존엄과 권위가 떨어졌음을 읽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요즘 한창인 국정감사에서도 장ㆍ차관들은 벌벌 떨기는커녕 더럽지만 참자는 식인 경우가 많다. 공직자들이 의원들에 맞서 싸우고 대드는 것은 이제 다반사가 됐다.

반말 호통에 삿대질하는 국회

그러니 국회의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나. '도대체 이것들이 국민의 대표를 뭘로 알고 이러나' 하는 생각에서 더 세게, 더 골치 아프게 나가는 경우가 생긴다.

19일 문화부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호칭문제는 시사적이다. 한나라당 전재희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장ㆍ차관에게 '님'자를 붙여 부르자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국민을 대신해 국정감사를 하는데 적절하지 않다고 항의했고, 전 위원장은 상호 존중하자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이때 참고인석에서 가수 유열 씨가 박수를 쳤다가 혼쭐났다. 민주당 최종원 의원이 "지금 누가 박수 쳤어? 박수친 사람 누구야?"라고 고함을 지르자 유씨는 국회 관례를 몰라서 그랬다고 일어나서 사과를 해야 했다.

그날 이후 최 의원에 대한 여론은 더 좋지 않아졌다.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과 입씨름하는 모습을 재미있어 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싸움하러 국회에 들어간 사람 같다거나 깡패 같다고 깎아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날도 반말로 삿대질하다가 점수를 더 잃었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외교통상부 국감장에서 반말을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내년 3월 핵안보 정상회의가 4ㆍ11총선의 법정 선거운동기간에 열리는 것을 문제 삼아 "그게 상식에 맞아?" "그게 무슨 궤변이야?"하고 장관에게 반말을 거듭했다. 평소 점잖게(또는 점잖은 것처럼) 행동하던 사람으로서는 뜻밖이었다. 선거운동기간에 그 회의가 열리는 게 대체 뭐가 문제인가. 정 전 대표는 결국 반말을 한 데 대해 세 차례나 사과했지만, 2006년 국감 때 국회 상임위 수석전문위원에게 "내가 지금 너한테 물어봤냐?"고 반말한 사실까지 다시 회자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발언을 할 때 자기들끼리 "존경하는 ΟΟΟ의원님…"이라고 존대하며 말을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존경은커녕 멱살잡고 욕이나 해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국회는 엉망이다. 욕설과 반말이 무슨 면책특권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라고 해서 공직자들에게 마구 반말을 하며 윽박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기자들은 초년시절에 경찰서를 출입하며 사건 취재를 배운다. 형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대충 말 놓기를 빨리 잘하면 유능하고 적응이 빠른 기자로 통하곤 했다. "경찰서장실은 발로 차고 들어가라"고 후배를 가르친 신문사도 있었으니 수사과장이나 서장에게 '님'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국회의원들도 이젠 달라져야

공무원 생활을 좀 하다가 신문사에 들어온 기자가 "부장님, 차장님"하고 부르다가 오히려 욕먹고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자기 회사 사장 회장에게도 경칭을 붙이지 않는 것을 당연시했고, 출입처에 나가서 높은 사람들을 직위만 부르는 것을 신문기자들은 큰 자랑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언론의 위상 약화와도 관련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기자들도 많이 예의 바르고 점잖아졌다. 해당 조직의 문화에 맞춰 스스럼없이 경칭을 붙여 부를 수 있는 기자는 성숙한 기자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자기들끼리는 존대하고 공직자들이라면 무조건 하대한다. 이렇게 호칭에 연연하거나 구애되는 건 하수다. 국회의원들은 달라져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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