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신용등급 강등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일찌감치 재정위기 국가 그룹인 PIIGS(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아일랜드ㆍ그리스ㆍ스페인)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앞서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나 포르투갈, 아일랜드와는 다를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분명 위태롭기는 하지만 유로존 경제 규모 3위의 대국까지 불길이 번지는 것만큼은 차단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막연한 희망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의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은 지금까지 변방으로만 번지던 재정위기의 불길이 본격적으로 유로존 중심부까지 옮겨 붙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이탈리아 상황 어떻길래
이탈리아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채무국이다. 중앙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부채가 4월 말 현재 1조8,900억유로(2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는 물론 스페인의 공공부채를 다 합한 것보다도 훨씬 많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19%로 그리스(142.8%)에 이어 유로존에서 두 번째로 높다.
특히 2013년까지 향후 2년여 간 만기 도래하는 국채가 5,000억유로를 웃돈다. 그간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제공된 구제금융 2,560억유로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구제금융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이탈리아가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아니라 '구제하기엔 너무 큰(too big to bail out) 나라'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문제는 이런 심각한 경제 여건에 대처할만한 정치적 리더십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S&P는 성명에서 "이탈리아 연정의 결속력이 취약하고 의회 내 정치적 이견으로 인해 국내외 악화된 거시경제 여건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정부의 능력이 제약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
이탈리아는 그 동안 국채를 발행해 재정적자를 메워왔고, 결국 이자 부담이 불어나면서 재정위기에 노출됐다.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이런 사정을 더욱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이미 이탈리아 국채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등급 강등은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이야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이탈리아 국채를 소화해주겠지만, 치솟는 금리 탓에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른바 '스노우볼 이펙트'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까지 내몰릴 수도 있다.
최악의 가정이긴 하지만, 단지 등급 강등에 그치지 않고 만약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처지에까지 몰린다면, 유럽의 재정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을 공산이 크다. 당장 이탈리아에 4,000억달러가 넘는 채권을 갖고 있는 프랑스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유럽연합(EU) 차원의 대응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조차 이탈리아의 이탈로 자본 확충이 어려워지면서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결국 유로존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더 심한 돈 가뭄 현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어떻게든 이탈리아까지 불길이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이탈리아마저 무너진다면 수습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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