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총체적인 도덕 불감증이 부른 파국이었다. 영업정지를 당한 7개 저축은행은 서민들이 맡긴 돈으로 불법 대출과 묻지마 투자를 일삼았다. 이를 감시를 해야 하는 금융감독기관 출신 사외이사들은 거수기 노릇만 했다. 금융당국은 이들 저축은행의 불법, 전횡이 노골화되는 동안 방관했다.
20일 한국일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분기보고서를 제출한 토마토, 제일, 제일2, 대영 등 퇴출된 4개 저축은행의 무수익여신(NPL) 잔액이 이미 지난 3월말 기준 7,105억원에 달했다. 무수익여신은 금융회사의 부실대출잔액과 부실지급보증잔액을 합한 것으로 수익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대출을 말한다. 무수익여신 잔액은 제일저축은행이 2,620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토마토 2,546억원, 대영 1,044억원, 제일2 895억원 순이었다. 프라임, 에이스, 파랑새 등은 공시하지 않았으나, 부실 규모로 추산해볼 때 7개 퇴출 저축은행의 무수익여신 잔액은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치는 금융당국의 경영진단 결과가 나오면 더욱 늘어나 상반기까지 2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금융권은 예상하고 있다.
실제 자본금이 9,918억원인 에이스저축은행은 경기 파주시 문산읍 아파트 개발사업, 고양시 일산터미널 신축 사업에만 6,400억원을 대출과 투자를 했다 회수하지 못했다. 또 해외 부동산에도 수십억원을 불법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에이스저축은행이 미국에 불법 투자한 사실이 적발됐다"고 말했다. 제일저축은행도 수익성이 불투명한 뉴스전문채널, 종합편성방송에 45억원을 투자하는 등 막무가내로 돈을 뿌렸다.
여기에 경영을 감시ㆍ감독해야 하는 사외이사와 감사는 저축은행과 '한통속'이었다. 2010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분기보고서를 제출한 대영, 제일, 토마토, 프라임 등 4개 저축은행 사외이사들은 60회에 가까운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에서 모든 안건에 찬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건도 ▦임원 연봉 인상 ▦유상증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건 등 중요한 경영 사안이었는데 반대의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특히 사외이사, 상근감사들이 대부분 금감원, 국세청,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등을 거친 고위 관료 출신들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제일저축은행에는 김창섭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감사원 출신 이국희씨가 사외이사로 돼 있다. 이종남 전 감사원장도 최근까지 사외이사로 있다가 사퇴했다. 제일2에는 손영래 전 국세청장, 토마토에는 조성익 전 재정경제부 경제자유구역단장 등이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다. 또 제일, 제일2, 토마토, 프라임, 에이스 등 5곳의 저축은행의 상근감사는 금감원 출신의 몫이었다. 경영진의 불법행위는 눈감고 대신 감독 당국의 검사를 막는 바람막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문제들을 사전에 제어하지 못한 금융당국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날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무위 의원들은 "이 지경이 될 동안 금융당국은 이 저축은행들에 대한 기관경고조차 한번도 내리지 않았다"고 감독 소홀을 질타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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