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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비정규직 대책과 '종합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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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비정규직 대책과 '종합선물세트'

입력
2011.09.2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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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받아 본 '종합선물세트'를 기분 좋게 추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게다. 포장만 '종합'일 뿐 초콜릿 몇 개 챙기고 나면 먹을 게 없는, 속 빈 물건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맘때면 으레 생색내기 서민대책이 나오는 터라 별다른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눈여겨보면 기대할 만한 몇 가지를 챙길 수 있다. 차별시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근로감독관이 차별을 직접 감독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점은 다소 권위주의적으로 보여도 뜻밖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올해 신청건수가 64건에 불과할 정도로 활용도가 낮은 차별시정제도는 비정규직에겐 그림의 떡 된지 오래다. 차별을 당해도 해고 등 불이익 때문에 신청을 꺼릴 수밖에 없는 탓이 크다. 현장감독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차별개선효과를 기대해볼만하다. 불법파견 시 사용기간에 관계없이 직접 고용토록 한 것 역시 불법 사내하도급에 의존하는 관행을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보험혜택 확대를 위해 보험료를 분담하는 방안이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한 기업에 세금감면을 확대하는 방안도 괜찮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근절할 획기적 방안이 빠진 겉치레 대책이라며 비난했다. 비정규문제의 핵심인 사내하도급 문제는 어물쩍 넘어간 데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목도 있으니 과한 비난도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노동과 복지에 대한 인색함을 고려하면, 이 정도 대책은 지금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최대치인 것 같다. 본래 종합대책이란 게 종합선물세트와 같아서 제대로 된 '획기적인' 알맹이를 기대하는 게 어불성설. 덮어놓고 비난해봐야 인색한 어른들에게 '꿀밤'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인 게 종합선물세트의 불편한 진실이니, 초콜릿이라도 챙기는 실용적 접근이 맘은 좀 찜찜해도 현명할지 모르겠다.

이번 대책이 그나마 효과를 발휘하려면 차별시정을 위한 제대로 된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 현행법 상 차별여부는 '동종유사업무 종사자'와의 비교를 통해 가려지지만, 작업분리 등으로 현장에서 비교대상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실질적 차별을 가려 뽑을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할 텐데, 다행히 정부도 일괄적인 복리후생과 상여금 등을 포함시킨다 하니 지켜볼 일이다. 현대차 불법 하도급 문제를 조속히 매듭질 수 있도록 노사정이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고, 비정상적 사내하도급 관행에 대해선 별도의 대책으로 보완해야 한다. 7월 노사정위원회가 마련한 권고 일색의 가이드라인으로 어물쩍 덮을 일이 아니다. 원하청간 불공정관행을 근절하지 않고선 비정규직 차별개선은 물론 고용의 9할을 거뜬히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창의나 건강한 시장경제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써 실용적 접근을 운운했지만 개운치 않다. 경영계의 반발이 심상치 않은데다 정부의 의지마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외면해온 노동계는 겸연쩍어서인지 짧은 논평을 내놓는데 그쳤지만, 경영계의 반응은 의외로 강경하다. 비정규직은 정상적이고 불가피한 고용형태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변화를 고려하면 이 같은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지나친 비정규고용으로 인력활용의 유연성은 물론 차별로 인한 비용절감마저 챙겨 온 기업이 다수임을 생각하면 쉽게 동의되지 않는다. 우리사회 전체를 '비정규사회'로 전락시킬 위험마저 안고 있는 비정상적 고용관행을 언제까지 기업 경쟁력의 기반으로 삼을 셈인가. 게다가 주무부처 마저 무기계약직에 대한 임금차별로 진정을 당할 처지라 하니, 이 정도면 나의 순진한 기대도 상처로 마감될 공산이 크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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