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은 1908년 태어났다. 1941년 감독 데뷔했으니 연출 경력만 70년이다. 올리베이라는 신작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을 찾았다. 같은 부문에 진출한 '하트비트'의 캐나다 감독 자비에르 돌란이 1989년생. 81년의 시간을 넘어 노장과 신진이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올리베이라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오래 전 유명을 달리한 감독들은 숱하다. '에덴의 동쪽'의 엘리아 카잔(1909~2003)과 '선셋 대로'의 빌리 와일더(1906~2002) 등은 그나마 장수했다지만 이미 흙이 되었다. 올리베이라보다 늦게 태어난 '시민 케인'의 오손 웰스(1916~1985))와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탠리 큐브릭(1928~1999)도 눈을 감은 지 오래다. 올리베이라는 103세의 나이에도 차기작을 물색하며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의 연륜과 열정이 놀라울 따름이다.
1960~70년대 홍콩을 거점 삼아 세계를 풍미했던 정창화 감독 회고전이 22일까지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다. 명성으로만 접했던, 귀한 작품 12편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후 충무로의 간판이었던 정 감독은 60년대 홍콩에 진출해 액션 감독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그의 영화 '천면마녀'(1969)는 홍콩영화 최초로 유럽에 수출됐고,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은 아시아 영화로는 처음 미국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지난 15일 오후 회고전 개막작으로 상영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명불허전이었다. "대단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화"(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라는 평이 단순한 과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정 감독이 홍콩으로 안 떠나고, 이만희(1931~1975) 감독이 술만 덜 마셨으면 한국영화 판도는 바뀌었을 것"이라는 김수용 감독의 개막식 축사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할리우드의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가 '킬빌'을 통해 헌사를 바칠만한 작품이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는 정 감독은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해 "모국에서 작은 규모의 액션영화를 연출하고 싶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올해 83세다. 한국 사회에선 메가폰을 들기 쉽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올리베이라에 비하면 중년이라 할만 하다.
'글래디에이터'(2000)로 유명한 리들리 스코트(74) 감독은 자신의 출세작 '블레이드 러너'(1982)의 후속작을 30년 만에 선보인다고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81)도 'J. 에드가'를 연출 중이다. 해외처럼 충무로에서도 노(老)대가의 "레디 액션" 외침이 울려 퍼져야 하지 않을까. '죽음의 다섯 손가락' 종영 뒤 쏟아진 갈채는 거장에 대한 목마름의 또 다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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