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직장인 주은혜(28)씨의 출퇴근 패션은 독특하다. 외부접촉이 많은 근무 특성상 옷은 셔츠에 스커트 등 세미 정장 스타일이지만 신발은 운동화, 가방은 백팩을 멘다. 주씨는 "운동이 되도록 버스에서 한 정거장 정도 먼저 내려 빠르게 걸으며 출근한다. 외부 회의가 있는 날은 회사 사물함에 놓아 둔 정장용 구두로 갈아 신으면 된다"고 말했다.
요즘 직장 여성들의 패션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명품 백 대신 백팩을 메고, 킬힐 대신 운동화는 신는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남에게 보여주기 보다는 내가 편한 게 최고라는 패션철학. 언뜻 보면 '언밸런스의 종결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편안함과 쓸모를 최우선으로 삼는 실용패션도 이젠 출퇴근길 하나의 패션조류로 자리잡고 있다. 나아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열풍이 여성패션을 바꿔놓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실 '정장에 운동화' 차림은 꽤 오래 전 '뉴요커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된 적이 있다. 뉴욕 외곽에서 장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해야 하는 뉴요커들이 오전에 운동화를 신고 출근한 뒤 회사에서 구두로 갈아 신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세련된 스타일을 중시하는 한국 여성들에게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올 들어 갑자기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는 여성 직장인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업계에선 그 이유가 2009년부터 일기 시작한 건강과 몸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여성들의 걷기 열풍과 그에 따른 여성용 워킹화ㆍ토닝화 바람에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신발시장 규모는 약 4조원. 그 중 워킹화를 필두로 한 기능화 시장은 6,000억원대로 매년 40~50%대의 폭발적 성장세다. 휠라코리아 오봉균 실장은 "여성용 워킹화 '휠라 핏'이 올해 나오면서 상반기 전체 기능화 매출이 전년대비 2배 가량 늘었다"면서 "출근길 운동화를 신으면 보기 이상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여성 직장인 고객들은 핑크, 옐로우, 그린 등 다양한 색상의 워킹화를 출근길 패션에 액센트를 주는 아이템으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생이나 남성 직장인들의 전유물로 생각됐던 백팩도 직장 여성들의 실용주의 패션 소재 중 하나다. 이는 스마트폰 대중화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인데 직장인들이 출퇴근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음악도 듣고 뉴스도 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이용하면서 한쪽 어깨에 메는 숄더백이나 손에 드는 토트백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해졌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손으로는 버스나 지하철의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보려면 백팩을 메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면서 "여기에 노트북이나 태블릿PC, 여분의 핸드폰 배터리나 충전기 등 부가적 IT 기기들을 가지고 다니게 되면서 핸드백보다 월등한 수납능력을 갖춘 실용적 백팩이 부각됐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마크제이콥스, 코치, MCM 등 핸드백을 주력으로 삼았던 고가의 준명품 브랜드들마저 앞다퉈 백팩을 출시하고 있다. 김동일 롯데백화점 선임상품기획자는 "인기 브랜드는 매월 재주문에 들어갈 정도로 여성의 백팩 구매가 급격히 늘고 있다"면서 "종전보다 30% 이상 백팩 물량을 확보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