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전자업체인 파나소닉은 현재 1만7,000여개에 달하는 자국 내 부품 협력업체 수를 내년 말까지 1만개로 줄이기로 했다. 대신 중국 등 신흥 국가에서 이를 충당할 계획이다. 원자재 조달과 물류 본부 또한 내년 중 일본 오사카에서 싱가포르로 옮길 예정. 우에노 야마 파나소닉 상무는 "엔고 등의 영향으로 해외 생산 거점을 보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3위 업체인 엘피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내 유일한 생산 거점인 히로시마 공장 설비의 40%를 앞으로 1년 내 대만 자회사인 렉스칩일렉트로닉스에 이전한다. 이로써 범용 D램 제품 생산은 전량 일본에서 대만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 것이 완료되면 일본과 대만에서의 엘피다 제품 생산 비율은 6대4에서 3대7로 역전된다.
일본 기업들의 열도 탈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원자재 조달 등 물류 거점은 물론이고, 주요 생산 설비마저 해외로 옮기고 있다. 남아 있는 기업들도 비용 절감을 위해 협력 부품업체를 대폭 줄이고 있다.
이러다간 '산업공동화'로 제조강국 일본이 무너진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전혀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경기 침체에다, 엔고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 실제로 지난 16일 엔화의 달러당 환율은 역사상 최고인 76엔에 다다랐다. 엔고 덫에 걸린 업체들이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해외 이전'카드를 꺼내 들고 있는 것. 여기에 더해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제조업에 필수적인 전기마저 부족한 상황이어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게 많은 기업들의 판단이다.
무엇보다 전자업계가 심각하다. 파나소닉이나 엘피다 뿐 아니라 소니와 도시바 등도 해외 이전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니는 이미 올해 1분기에 일본 내 부품 및 소재 협력사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도시바도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공장의 해외 이전을 생각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도요타의 경우, 종전 일본에서 생산해 한국으로 들여왔던 캠리와 프리우스 등의 차량을 미국에서 반입키로 했다. 이로 인해 일본 내 생산이 줄어 들었음은 물론이다.
마츠다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크에 신규 공장을 설립해 해외 생산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닛산과 혼다, 미쓰비시도 미국 및 멕시코, 태국, 인도 지역의 생산시설 증설 계획을 밝혔다.
이와 관련,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 내 주요 기업 대표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는 "엔고가 지속될 경우 3년 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길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엔고의 장기화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전력난으로 조업 단축 등이 이뤄지면서 더 많은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 제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고 우려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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