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서야 할 때에는 정교분리 원칙 뒤에 숨더니, 자중해야 할 때에는 나서는가."
기독교계 원로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73)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일각에서 기독교 정당 창당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지난 14일 한국교회언론회 주최로 열린 '기독교 정당 과연 필요한가?' 토론회에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독교 정당 논란이 불거진 것은 지난 2일 전광훈(사랑제일교회)ㆍ장경동(대전중문침례교회) 등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모여 기독자유민주당(가칭) 창당을 선언하면서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와 유석성 서울신학대 총장, 200여 중견 목회자들의 모임인 미래목회포럼 등은 즉각 반대 의견을 냈다. 여론이 악화되자 창당에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던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 등 대형 교회 목사들이 줄줄이 불참 의사를 밝히고 있다.
기독교 정당의 국회 진출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인 고 김준곤 목사와 조용기 원로목사 등이 주축이 된 한국기독당이 나섰으나, 전체 유효투표 2,128만5,884표(투표율 60.6%) 가운데 22만8,837표(1.07%)를 얻는 데 그쳤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기독사랑실천당(대표 민승 목사)이 전체 유효투표 1,713만1,537표(투표율 46.1%) 중 44만3,775표(2.59%)를 얻어 역시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선거철만 되면 기독교 정당이 '발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기독교 정당 불가론을 펴고 있는 이 명예교수의 말을 들어보았다.
-기독교 정당 창당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결사를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기독교 정당 창당을 반대하는 것은 때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기독교를 '개독교'로 비난하는 지금 기독교 이름을 내걸고 정치를 하겠다면 국민이 수긍하겠는가? 그 동안 한국 기독교가 인권과 환경, 남북(세계빈부격차), 핵, 노동, 실업, 인종차별, 남녀평등 등 사회문제에 제대로 관심을 가졌는가? 그런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정당부터 만드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 기독교 정당 결성에 앞장선 목회자들이 민주주의나 공의,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인지도 의심스럽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다종교 사회인데 굳이 기독교 이름을 내세워 종교적 갈등을 가져와야 하겠는가? 기독교 정당은 이미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 도전했다가 참담하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정교분리 입장인가.
"사실 역사적으로 정교분리 원칙은 종교가 세속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속정치가 종교를 탄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까지 우리 보수 기독교계는 사회참여에 나설 용기가 없어 정교분리 원칙 뒤에 숨었다.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을 축복할 때는 서로 나가려고 하면서 독재를 비판할 때는 정교분리를 앞세우는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식 정교분리 원칙이었다. 사회와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교회가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을 만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기독교는 정당을 통하지 않고도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삶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매달려 세상에 승리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 1,200만 기독교인들은 한국교회 전체가 스스로 십자가 정신으로 돌아가 자기를 부정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게 우선이다. 사회가 교회를 비판한다고 분개해 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실제로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는 활발하다. 국내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70%가 기독교인이다. 정당 만드는 데 앞장서는 몇 사람 때문에 그들이 쌓은 공든 탑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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