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소금은 죽음과 떼놓을 수 없는 매개체다. 한 움큼의 소금과 흰 부채가 담긴 봉투를 지붕 위로 던지는 의식은 일본의 장례 절차 중 하나다. 사자(死者)가 생전에 바라던 소원을 취소하는 의식이다. 일본인에게 소금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처음엔 소금의 투명한 빛깔과 일본에서의 독특한 의미 때문에 흥미를 느꼈지만 이제 소금은 나의 모든 기억과 상처, 삶과 죽음을 포용합니다."
1999년부터 소금을 소재로 작업해온 일본의 설치미술가 모토이 야마모토(45)씨가 16일 개막한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시티넷 아시아 2011' 전을 찾았다. 국내 그룹 전시로는 2004년 광주 비엔날레에 이어 두 번째다. '시티넷 아시아'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하는 격년제 전시로, 올해는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등 4개국 작가 37팀이 최근 아시아를 휩쓴 자연적, 정치적 재난과 재앙을 대주제로 50여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모토이 야마모토는 재난으로 사라진 자들을 기리며 30시간 동안 '플로팅 가든'(floating gardenㆍ부유하는 정원)을 설치했다. 섬세하게 직조된 레이스 혹은 해변에 남긴 파도의 흔적 같은 순백의 소금 그림. 2009년부터 이어온 연작이다. '시티넷 아시아'의 일본측 전시를 담당한 21세기현대미술관의 히로미 구로자와 큐레이터는 그의 작품에 대해 "재난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어떤 감정에 휩싸이고 미래를 위해 어떻게 극복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조선소 노동자였고, 뒤늦게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작가의 행로는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바뀌었다. "한때 주어졌지만 사라진 존재에 대한 슬픔과 놀라움 속에서 한동안 속수무책이었어요. 손에 닿을 듯하지만 닿을 수 없고,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존재를 소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거죠. 전 이것을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양면성이라고 봤어요."
바다에 섞여 있지만 잡히지 않는 소금은 상실감을 표현하는 적절한 매개체다. 작가는 소금으로 바람에 떨어진 꽃잎, 항구에 정박한 배, 설산과 무너진 계단 등을 작업했다. 전시가 끝난 뒤 작품에 쓰인 소금을 관객들이 가져다 바다에 뿌리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시도한 이 작업은 일본 가나자와와 교토, 독일 쾰른, 함부르크, 프랑스 파리와 마르세유로 이어졌다. "저와 관람객이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다는 사실과 순환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했습니다."
올해로 다섯 번째 막을 올린 '시티넷 아시아'전은 11월 6일까지 열린다. (02)2124-880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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