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통령선거는 흥행이나 빅 매치에 대한 오래된 추억이다. 16년 만에 부활한 직선제였고 국민적 감동을 만드는 수단이 그것 외엔 별로 없었다. 부산 수영만에, 서울 보라매공원에, 여의도 광장에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그들 모두가 지지자는 아닌 '물 반 고기 반'의 상황이었지만 그 자체가 흥행과 빅 매치의 상징이었다.
거의 4반세기가 지난 요즘까지도 정치권은 과거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이벤트라는 요인까지 겹쳐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구상하고 있는 생각은 그저 '어떠한 이벤트로 무슨 빅 매치를 이끌어 흥행에 성공할까'뿐이다. 한나라당이 내부 주자와 외부 인사를 내세우는 빅 매치를 구상하고 있고, 민주당은 내부 경선의 흥행을 위해 남녀 각 두 명씩 4각 이벤트를 만들어 놓았다.
흥행·빅 매치에 목매는 정당들
9월 말이나 10월 초엔 거대한 체육관에 모여 앉아 함성을 지르고 색종이 조각을 날릴 것이다. 경선을 통해 후보자를 뽑는다는 명분일 텐데 늘 그래왔듯이 그들만의 축제로 마무리될 게 뻔하다. 가끔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째 옛날의 '장충체육관 선거'모습만 연상된다. 그런 행사 하지 않으면 좋겠다.
한나라당의 '1대 1 빅 매치'나 민주당의 '2+2 이벤트'가 흥행을 위한 각본에 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각본에 맞춰 후보자를 선정하려 드니 굳이 출마하겠다는 인사에겐 당 지도부가 불출마를 호소하고, 별 생각 없다는 인사에겐 여기저기서 출마를 부추기는 상황이 생긴다. 이러한 모습들이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이미 각본의 내용이 공개돼 버리고 당연히 흥행엔 찬물이 쏟아진다. '박원순-안철수 카드'가 현재까지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이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여줬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터이다.
체육관 후보 선출도 다르지 않다. 당사자들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요즘의 유권자들은 그러한 모습에 감동은커녕 별다른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누가 얼마만큼의 지지로 선출되었는지 한 두 컷의 장면만 살필 뿐이다. 오히려 함성을 지르고 색종이를 날리는 모습에 짜증스러워하지는 않을까. 대의원 직접 투표를 위한 방편이라고 보기엔 허례허식이 너무 심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대의원들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는 방법으로 그런 식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낡은 정치'로 낙인 찍히고 유권자의 흥미를 내쫓는다. 일상의 공간에서 몇 마디 말과 가벼운 포옹으로 마무리한 '박원순-안철수 경선'에 사람들은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은 변화이며 그것은 일단 가시적인 모습에서 시작해야 한다. 관심과 애정의 출발이 호기심과 기대감일진대 최소한 후보선정 과정과 주자경선 방식에서라도 국민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일으켜야 한다. '빅 매치' 대신 통 큰 타협을 생각해 보고, '이벤트 각본' 대신 자유의지를 발산토록 한다면 훨씬 산뜻하지 않을까. 체육관에서 후보를 선출하는 노력과 비용의 몇 %만 들이고도 애정과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궁리라도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의 의식은 이미 예전 같지 않은데, 정치권의 정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으니 관심과 애정이 생겨날 여지가 없다.
꿈같은 변화 없으면 혐오감만
"어제 밤부터 오늘 오후까지 후보 예정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한 결과 참가자 모두가 이 사람을 우리의 후보로 결정했다"거나, "이미 그 과정을 상세히 공개한 절차에 따라 당원투표를 실시했더니 이 사람이 최적의 후보가 됐다"고 발표한다면 어떨까. 너무나 정치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까. 하지만 이런 수준의 꿈 같은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 정치현실조차 금세 없어질 것이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사라진 곳에는 무관심을 넘어 혐오감만 자란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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