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건강 장수를 고대하는 전 세계인의 눈길을 확 사로잡는 기사 하나를 실었다. 바로 100세 마라토너 파우자 싱(인도계 영국인)의 믿지 못할 스토리였다. 그는 89세가 되면서 마라톤을 시작해 7차례나 완주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름하여 세계 최고령 마라토너. 그에게 마라톤은 건강하게 생을 연장하는 확실하고 보증된 수단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마라토너는 누구일까. 대한육상경기연맹에 공식대회 출전자의 연령을 확인한 결과, 강원 속초시에 사는 주수진(87)씨가 최고령자였다.
마라톤에 첫발을 디딘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주씨는 약 150차례 대회에 참가해 대부분 완주했다. "짧은 거리인 10㎞나 하프마라톤은 한 달에 한두 번 뛰고 풀코스(42.195㎞)도 1년에 한 번은 뛰어. 일일이 세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150번은 될 거야." 이쯤 되면 그의 최고기록이 궁금해진다. "요즘은 5시간 30분이지. 하지만 10년 전 마라톤을 시작하고 처음 뛴 춘천마라톤대회에서는 4시간 50분으로 내 최고기록을 세웠어."
그는 다른 이들 같으면 자리 보전하고 누울 70대 후반의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두고 온 고향을 반드시 가 보고 말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1943년부터 증기기관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6ㆍ25전쟁이 터지는 거야. 아내 하고 아이 하고 무작정 남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 당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라 다른 사람같이 생이별은 안 겪었지만 고향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헛헛하던지. 그래서 통일 되는 날까지 살아서 고향에 가 보려고 마라톤을 시작했지. 마라톤을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잖아."
마라톤은 주씨가 슬하의 6남매와 8명의 손자 손녀에게 몸으로 남기는 교훈이기도 하다. 가족이 아닌 다른 젊은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난 월남 후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겨냈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지. 사업으로 자리도 잡았고. 그런데 요즘 사람들 지레 포기하잖아. 약해 빠져서는. 그래서 이런 호호 할아버지도 열심히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 그 어렵다는 마라톤도 가능하다, 그러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을 주고 싶었어."
상상 불가능한 그의 괴력의 원천은 꾸준한 연습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5㎞를 뛴다. 경기를 앞두고는 10㎞를 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모자 질끈 눌러쓰고 뛴다.
마라톤을 원래 외로운 스포츠다. 그래서 함께 연습하고 시합하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내가 고문으로 있는 속초마라톤클럽 식구들이 매일 아침 같이 연습해 주고, 시합도 같이 하니까 힘이 나지." 대회가 있을 때마다 얼굴 마주치는 노령 마라토너들도 그에겐 더 없는 친구. "서울에 팔십 먹은 김지학씨라고 있는데 자주 보니까 식구 같아."
주씨는 마라톤뿐 아니라 못하는 스포츠가 없는 다재다능한 체육인이다. 사이클은 고교 때부터 '달인' 소리를 들었는데 꾸준히 탄 덕에 10여년 전에는 강원도민체전에서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마라톤으로 다져진 체력을 바탕으로 산악마라톤에도 단골 출전하고 있다.
그는 2006년부터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에도 도전해 완주하고 있다.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이어서 뛰는 철인3종 경기는 20대 젊은이들도 하기 쉽지 않는 어려운 스포츠여서 그의 도전에 고개가 숙여진다. 철인3종 경기 모임인 속초철인클럽의 고문도 맡고 있다. 노익장 스포츠맨으로서의 유명세 덕분일까, 그는 최근 KBS2 TV '1박2일'의 '시청자 투어'편에 80대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마라톤을 시작하고는 감기도 한 번 안 걸렸어. 정신도 강해지고. 마라톤, 이거 정말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그의 마라톤 예찬은 이렇게 죽 이어졌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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