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6일/나타샤 캄푸쉬 지음·박민숙 옮김/은행나무 발행·304쪽·1만2,000원
2006년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선정한 최고의 악인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었다. 사유는 물어볼 것도 없이 지하 핵실험. 그렇다면 그해 최고 영웅은? 납치 8년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오스트리아 소녀 나타샤 캄푸쉬다.
캄푸쉬는 열 살 때인 1998년 등교하던 중 납치돼 자신의 집에서 10km 떨어진 한 가옥의 지하실에서 3,096일을 갇혀 지내다 극적으로 탈출했다. 탈출 직후 납치범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호감과 지지를 보내는 스톡홀름증후군을 보이기도 했다. 범인은 그녀가 탈출한 사실을 알고는 바로 기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의 희귀성, 이야기의 자극성, 대중의 관음증 3박자가 맞아떨어지며 이 뉴스는 전세계로 퍼졌고 그녀는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다시 5년이 지나 캄푸쉬는 이제 언론에 노련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고, 이 끔찍한 경험이 자본주의 시대에 '경쟁력'이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이토록 영리하게 고백한다. "이젠 나의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졌다고 느낀다."
<3096일>은 이 숙녀의 고백록이다. 지난해 9월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된 후 유럽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화제를 모았다. 책은 한 편의 소설처럼 극적으로 구성된다. 캄푸쉬의 고만고만하게 불우하면서도 나름 행복했던 가족사가 짧게 언급되고, 납치된 날의 일이 슬로모션처럼 서술된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범인은 다시 나를 담요로 감쌌다. 어둠과 질식할 것만 같은 공기. 그가 나를 들어 올려 한참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이후 8년 간 납치범의 노예로 살았으며 정기적으로 수백 대씩 맞는 등 심각한 구타를 당했다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서술한다. 납치범의 광기는 갈수록 심해져 캄푸쉬에게 자신을 '주인'이라고 부르게 했고 고개를 숙인 채 반나체로 온갖 집안일을 하게 했다. 그녀는 납치범과 한 침대에서 잠들었다고 털어놓지만, 성폭행을 당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끔찍한 과거를 고백할 만큼 강해진 그녀는 '나는 자유다'는 말로 책을 마친다.
'나는 탈출을 통해 나를 괴롭히는 자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동시에 필연적으로 가깝게 지냈던 한 사람을 잃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슬픔을 용납하지 않았다.'
탈출 이후 줄곧 납치범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저자는 언론과 대중에게도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이를테면 이들의 집요한 관심을 '새로운 감옥'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만천하에 심경 고백하는 이런 에세이를 쓰는 행동 말이다. 갑자기 이 에세이, 제목까지 비슷한 신정아씨의 에세이 <4001>과 겹쳐 보인다. 이 책에 손길이 가는 것도 비슷할 이유일 게다. 어쨌든, 그 속내는 궁금하니까.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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