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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9999조원을 넘어 통계 단위 '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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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9999조원을 넘어 통계 단위 '京의 시대'

입력
2011.09.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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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1. 10,000,000,000,000,000원은 어떻게 읽을까.

퀴즈2. 9,999조원에 1조원을 더하면?

아마도 '1만조원'이라고 답한 이들이 적지 않았을 터. 물론 틀렸다. 답은 1, 2번 모두 1경(京)원이다. '경'이라는 단위를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건, 실생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수(數)의 단위이기 때문이다. '0'이 무려 16개나 붙으니, 아라비아 숫자로 봐서는 한 눈에 알아보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경제 통계에 '경' 단위 수치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경제 규모가 커지다 보니 통계의 단위가 갈수록 확대되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 통계에 경 단위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4년이다. 국내 금융회사의 파생상품 거래 규모가 2경원을 돌파한 것. 전년도까지만 해도 계약 수로만 통계를 집계하다 금액 단위로 통계를 바꾸자 단위가 갑자기 치솟은 것이다.

그래도 파생상품 거래는 매매에 따른 차액만 결제하기 때문에 이 금액이 실제로 거대된 것은 아니다. 통계상으로 잡히는 가상의 수치인 셈이다.

실제 의미 있는 통계에서 경 단위가 등장한 것은 올 3월이다. 정부와 기업, 가계 등이 보유하고 있는 국내 총 금융자산이 지난해 말 현재 1경원을 돌파했다. 무려 1경297조7,000억원. '경 단위 통계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 단위 수치를 잘 이해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영어식 표현에도 애로가 상당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나 광의유동성(L) 등의 지표는 경 단위 바로 직전의 수천조원에 달하는 상황. 7월 현재 시중에 풀린 광의유동성이 2,887조원인데, 영어로는 2,887trillion으로 표현한다. '트릴리언(trillion)'이 조를 뜻하는 단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단위 더 높아져 경 단위까지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경 단위는 트릴리언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 10의 15승을 나타내는 쿼드릴리언(quadrillion)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는 화폐단위가 대개 우리나라의 100분1에서 1,000분의1 수준인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단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쿼드릴리언 단위를 쓰면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낯설어 한다"며 "심지어 그들에게 영어사전을 펼쳐 보여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화폐 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 뿐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100원을 1원으로, 혹은 1,000원을 1원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환율도 1달러당 1,000원이 넘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 화폐 가치가 매우 낮은 것처럼 비춰지는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화폐 재발행, 현금인출기ㆍ자판기 교체 등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고, 물가 상승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지금까지 수 차례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이 좌절된 것도 이 때문이다. 여전히 리디노미네이션 요구가 많지만, 당분간 경 단위 통계를 계속 봐야 할 공산이 커 보인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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