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서늘해지고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다. 내년 봄볕이 다시 유혹하러 나오기 전까지는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일만 남았다. 여름철을 나느라 벌거벗은 것처럼 휑뎅그렁한 집안을 따스하고 아늑하게 바꿔보고 싶은 욕구가,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마음 속에서 일렁인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좀 있는 이라면 아마도 이 무렵 북유럽 스타일을 떠올릴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북유럽 디자인이 붐을 이루면서, 단순하고 세련되면서도 따뜻하고 온화한 스칸디나비아식 집 꾸미기가 한국의 여심을 사로잡았다. 이번 가을, 우리 집 거실에 스칸디나비아를 들여놓는 것은 어떨까. 북유럽 스타일로 집안을 꾸밀 수 있는 노하우를 소개한다.
북유럽 스타일, 대한민국 가정에 상륙하다
사실 인테리어 하면 그동안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화려한 디자인이 주류를 이뤘다. 프랑스의 전원풍 인테리어로 프로방스 스타일이 한창 인기를 끌었고, 미적으로 정교하고 럭셔리한 이탈리아 스타일은 인테리어의 변치 않는 고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디자인의 축은 급속하게 북유럽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시중에는 북유럽 디자인을 주제로 한 책들이 매주 쏟아져 나오고 있고, 북유럽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업체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서울 양재동에 신규 대형 매장을 추가 오픈한 북유럽 디자인 전문점 '이노메싸'의 마재철 대표는 "그동안 유행했던 화려한 스타일에 식상해지고 세계 최대의 가구 업체인 스웨덴의 이케아가 조만간 한국에 진출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북유럽 바람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순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 북유럽 디자인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을 거스르는 세련된 디자인
북유럽 디자인의 특징은 가격대가 폭 넓고, 내구성과 자연친화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유럽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자라는 나무들은 굉장히 단단해 가구 소재로 활용하기 매우 좋은 데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는 디자인도 많다. 알바 알토가 1937년 디자인한 사보이 꽃병(85달러부터)은 핀란드 호수의 모습을 관찰해서 만든 최초의 유기적 디자인으로, 여전히 절찬리에 판매 중이며, 그의 아내인 아이노 알토가 1932년 제작한 물결무늬 컵(2개 세트 19달러)도 여든 살이 된 제품이지만 스테디셀러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 자원이 부족한 북유럽 국가들이 정부 차원에서 디자인을 적극 육성한 것도 북유럽 특유의 디자인이 성장하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빈티지 가구… 쉼을 상징하는 의자에 포인트를
집안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가구는 의자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소파를 바꾸면 단숨에 집안 분위기가 확 바뀌지만500만~600만원대의 가구를 선뜻 들이기는 쉽지 않으므로, 이럴 때는 특색 있는 디자인의 단품 의자로 포인트를 주는 게 좋다.
북유럽 가구는 자연적이면서 내구성이 뛰어나 3, 4대를 거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빈티지풍이 발전했다. 이 중 의자가 특히 발전했는데, 기후 특성상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고, 쉼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의자의 특징은 사람이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푹 쉴 수 있도록 인체 곡선에 따라 나무를 휘게 하는 기술이 매우 발달했다는 것. 알바 알토사의 'Stool E60', 아르네 야콥센의 '에그 체어(egg chair)', '스완 체어(swan chair)' 등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고가의 명작들이다. 옌스 파거의 원색 휴식의자(RAW Lounge Chair) 스타일도 포인트 가구로 손색이 없다.
패브릭 제품으로 따스하게, 가족액자로 아늑하게
북유럽인들은 기후적으로 혹독한 겨울이 길기 때문에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 심리적으로 우울할 수 있기 때문에 따뜻하게 보이는 천을 이용한 인테리어가 발달했다. 베이지나 브라운 같이 차분한 색감의 소재가 많이 사용되고, 벽에 천을 걸어두는 태피스트리가 애용된다. 바닥에 카펫을 깔아 놓는 것은 기본이다.
커튼의 경우, 겨울엔 두껍게 하여 한기를 막지만,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에는 집안에 최대한 많은 빛을 들이기 위해 투명한 천을 사용하기도 한다. 핀란드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마니아를 거느린 마리메꼬(marimekko)가 대표적으로 천을 이용하는 브랜드다.
북유럽의 밝고 대담한 패턴은 실내를 밝고 화사하게 꾸미고자 하는 욕망의 소산이다. 흰색이나 아이보리, 자연스러운 원목 색깔로 벽을 차분하게 꾸민 후 빨강, 노랑, 주황, 초록 등의 원색 패브릭 제품으로 대담하게 포인트를 준다. 자연의 형상에서 따온 패턴이나 기하학적 문양 등이 그려진 것을 선택하면 감각적인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벽에 다양한 사이즈의 가족사진이 군락을 이루도록 걸어두는 것 또한 북유럽 거실의 따스한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방법이므로 참고해보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나 아끼는 접시 등을 벽에 걸어두는 것도 포인트로 유용하다.
인테리어의 핵, 소품과 그릇
가구나 커튼, 카펫 등 고가의 제품을 굳이 새로 사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인테리어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릇 등 주방용품이나 인테리어 소품을 이용하는 것. 북유럽은 따뜻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원색적인 색감을 쓰는 그릇들이 많은데, 핀란드의 이딸라(Iittala), 아라비아 핀란드(Arabia Finland), 쇼룸핀란드(Showroom Finland), 스웨덴의 호가나스(Hoganas), 로스트란드(Rorstrand) 등이 대표적이다. 선반이나 뚜껑 없이 오픈된 수납장에 보관하면 그 자체로 화려한 장식적 효과를 낸다. 거실 탁자 위의 꽃병, 화분과 화분 스탠드, 시계와 조명 스탠드 등 소품들은 그 하나만으로도 인테리어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으므로 고려해 볼 만하다.
복합조명으로 은은한 실내를
조명은 놓치기 쉽지만 가장 완성도를 높여주는 인테리어 항목이다. 북유럽의 조명은 우리처럼 한 공간에 하나의 조명을 쓰기보다는 복합조명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조건 밝은 빛을 내기보다는 간접조명을 통해 벽과 천장, 마루 등에 빛을 반사시켜 은은한 분위기가 나도록 하는 식이다. 디자인은 단순하면서도 크기가 큰 것이 스타일리시하다. 덴마크 조명회사 루이스 폴센의 수백만원대 펜던트 제품(줄에 매달린 천장 조명)이 매우 유명하며, 핀란드의 섹토 디자인(Secto design)은 핀란드의 상징인 자작나무로 조명을 만들어 자연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집 안에 촛불을 켜두는 문화 또한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북유럽 디자인 전문 업체인 노르딕파크의 김사원 대표는 "제대로 된 북유럽 인테리어를 구현하려면 무턱대고 고가의 제품을 들이기보다는 차근차근 북유럽의 멋을 즐기면서 작은 소품부터 하나씩 구매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박성진 인턴기자(서강대 정치외교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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