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촉발된 안철수 바람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처럼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참신한 인물이 정치에 나서야 한다고 보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청렴한 사람이라도 막상 정치에 발을 들여 놓으면 온갖 정치적 풍파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러한 논쟁은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와 연결되어 더욱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 대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철학과 신념 멋대로 바꾸는 정치인
무엇보다 정치는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흔히 '그 사람 정치적이야'라고 하면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가졌거나 권모술수에 능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의 핵심은 국민 다수의 지지이며, 정보화 시대에는 웹상에서의 인기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안철수 씨는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일찍이 마키아벨리가 설파했듯이 대권을 얻으려면 술수와 지략뿐만 아니라 사자와 같은 용기를 갖추어야 한다. 안 씨가 결연한 의지로 정치투쟁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몇 번의 대통령 선거를 돌이켜 보면 한 때의 높은 인기로 대권경쟁에 나섰다가도 치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 했다. 인간은 공동체를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무인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정치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말 속에 담긴 진정한 정치의 의미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의 진정한 의미는 사회를 질서정연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정치란 바른 것이라 말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를 선출하려면 그가 가진 뜻과 신념이 옳은지 살펴봐야 한다.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춘 사람은 시민들이 꿈꾸는 미래와 부합하는 모습으로 국가를 이끌어 갈 철학과 신념을 소유한 자다. 즉, 미래의 시민 각 사람의 삶과 우리가 살아갈 한국 사회 전체의 모습을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정치의 전부인 사람은 필요하다면 철학과 신념을 바꾸기도 한다. 믿지 못할 정치인이다. 권력만 추구하는 자가 옳지 않은 신념으로 잘못된 곳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면 더 큰 낭패일 것이다.
그렇다면 권력에의 의지와 미래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정치의 전부일까? 미국의 정치학자 이스턴은 정치란 사회적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 했다. 공권력을 기반으로 정부정책을 결정하고 국가경제를 관리하고 이끌어 가는 국정관리가 정치라는 것이다. 이에 부합하는 지도자는 오랜 국정관리의 경험과 깊은 경륜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국정관리도 기업경영처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경영과 국가의 안전을 확보하고 모든 국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정관리가 서로 같을 수는 없다. 기업가적 자질만으로 국정관리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권력 집착 시대는 저물고 있어
이번 일로 국민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이 매우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인들은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여 국민적 신뢰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도 재삼 확인 했을 것이다. 국가를 책임질 정치지도자는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갈 올바른 철학과 탁월한 국정관리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오랜 역사적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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