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정전사태가 발생한 15일 전국 곳곳에서 도시 기능이 부분적으로 마비되는 등 대혼란이 빚어졌다. 이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정전으로 대도심 지역에선 교통신호등이 꺼져 차량이 뒤엉키면서 교통대란이 빚어졌고, 곳곳에서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수천명이 갇혔다 구조되는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 KT와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들은 기지국의 예비 배터리를 가동, 통신망을 유지했으나 일부 지역에선 기지국 가동이 중단돼 휴대폰이 불통됐다. 그러나 병원 등 주요시설에서는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자체 발전 시설을 가동해 이번 사태로 인한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오후 3시께부터 정전사고가 발생한 서울과 대구, 광주 등 대도시 지역에선 교통신호등이 꺼지면서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특히 30분~1시간씩 돌아가며 순차적으로 발생한 정전으로 인해 차량들이 뒤엉켜 오후 늦게까지 교통마비 현상이 계속됐다. 오후 3시50분께 정전이 일어난 전남 순천에서는 선평삼거리~중앙로 15㎞ 구간 신호등이 일제히 작동이 멈추면서 차량 수백여대가 뒤엉켜 일대가 1시간 가량 혼란에 빠졌다.
시민들이 건물 엘리베이터와 현금인출기 코너에 갇히는 사고도 속출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현재 전국에서 발생한 승강기 갇힘 사고는 944건에 달했다. 우리은행 서울 명동역점 365코너에 갇혀있던 임미경(42)씨는 “갑자기 현금인출기 화면이 꺼지고 인터폰도 먹통이 되면서 문이 잠기는 바람에 10여분 동안 갇혀있었다”며 “구조된 뒤 사고원인이 한전의 예고 없는 전기공급 중단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울산 등지에서는 대형건물에서 비상발전기 가동으로 발생한 연기를 화재로 오인해 소방차가 출동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정전사태의 불통은 교육현장으로도 튀었다. 2012학년도 수시모집 원서접수 마감일인 이날 정전 여파로 대학 원서접수시스템이 다운되면서 전국 35개 대학들이 접수 마감을 하루 더 연장하기도 했다. 국민대 관계자는 “정전이 발생해 원서접수를 못하고 있다는 문의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됐다”며 “수험생들이 거주하는 지역별 정전 복구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접수 마감 시간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남지역에선 오후 4시40분께 도교육청의 인터넷 서버가 있는 경남교육연구정보원의 정전사태로 18개 시ㆍ군 지역교육청과 일선 학교의 업무관리 시스템이 불통돼 복구작업을 벌였다. 전북의 상당수 학교에서는 컴퓨터 실습 등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고, 대전시교육청도 건물 전체가 정전돼 업무가 한때 마비됐다.
병원에서는 일부 의료기기가 먹통이 되고 전산시스템이 마비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의 경우 오후 1시48분께 순간 정전되면서 MRI(자기공명영상)와 MDCT(다중검출 전산화단층촬영장치)가 고장 났다. 병원 관계자는 “순간 정전됐다가 다시 전기가 공급되는 과정에서 MRI 2대 중 1대의 항온항습장치가 고장 나고 MDCT의 퓨즈가 나갔다. MDCT는 퓨즈를 교체해 가동 중이나 MRI 항온항습장치는 수리 중이다”라고 말했다. 청주 하나병원에서는 오후 4시15분부터 50여분 동안 전산시스템이 마비되는 바람에 진료가 지연되는가 하면 일부 환자들은 되돌아가기도 했다.
정전은 프로야구 경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후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2011 프로야구 경기가 시작 14분 만인 6시44분께 갑작스런 정전사태로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냉장고가 가동되지 않은 식당과 식품점 등에서는 정전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둘러 문을 닫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전통재래시장에서 한우축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4세)씨는 “처음에 몇 분만 그러려니 했다가 정전시간이 1시간 이상 길어지는 바람에 장사를 접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남 순천의 한 한우전문 식당에서는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냉장고에 보관 중인 고기가 상할 것을 우려해 손님들에게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에 고기를 판매하기도 했다.
전국종합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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