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그룹 로비스트 박태규(71ㆍ구속기소)씨의 정ㆍ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캐나다 도피 5개월 만인 지난달 28일 자진 귀국해 구속된 박씨의 굳게 닫혀 있던 '입'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 광범위한 주변 조사를 통해 많은 정황 증거들을 수집해온 검찰은 이제 결정적 증거인 박씨 진술까지 확보함에 따라 수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검찰의 '속전속결' 수사 방침은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한 전격 소환 통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수사팀 핵심 관계자는 14일 오전 "박씨의 진술에서 청와대 인사나 정치인의 (로비 의혹) 연결고리는 현재로선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15일 오전 검찰은 김 수석에게 '피내사자 신분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며 출석을 요구했다. 단 하루 만에 상황이 180도 바뀐 것인데, 이는 14일 오후 박씨가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청탁과 함께 김 수석에게 1억원 상당의 현금과 상품권 등을 건넸다"고 실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 해도 관련 진술이 확보되자마자 곧바로 검찰이 금품 수수자에게 소환을 통보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별수사에 밝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통상적인 수사 절차와는 상당히 다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는 진술의 신빙성을 다각도로 검증해 보는 절차에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도 검찰이 이처럼 자신 있게, 그것도 현직 청와대 수석을 소환한 것은 박씨와 김 수석 간의 통화내역이나 골프장 라운딩 기록, 상품권 구입 등과 같은 정황 증거들로 혐의점이 상당부분 입증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사팀 관계자는 "갑자기 수사 상황이 급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주목할 것은 검찰이 겨냥하고 있는 박씨의 로비 대상이 더 있다는 점이다. 검찰 주변에선 박씨와 친분이 깊은 인사들로 현 정권에서 청와대와 정부 고위직을 지낸 S, L, H씨를 비롯해 여당 중진의원 A씨 등 국회의원 5, 6명, 광역자치단체장인 K씨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또 박씨가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퇴출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들을 접촉했다는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김 수석에 대해 털어놓은 만큼, 이들 가운데 일부 또는 상당수도 이미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조만간 소환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특히 박씨가 부산저축은행에서 받은 17억원 가운데 김 부회장에게 돌려준 2억원, 박씨 개인금고 등에서 발견된 5억원, 김 수석에게 건넸다는 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9억원 중 상당액도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 진술에서 나온 로비 대상자들의 혐의점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전방위 수사를 예고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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