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환율 정책이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7ㆍ4ㆍ7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강국) 공약'을 내세운 MB정부는 집권 초기 수출을 늘리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다 수출 대기업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과 함께 고물가 책임론이 들끓자, 올 들어 환율 하락(원화 강세)을 용인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우리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이 재정위기에 휩싸이면서 경상수지 흑자 기조마저 위협 받는 상황에 처하자, 환율정책의 무게 중심을 수출 쪽으로 다시 옮기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최근 환율 흐름도 이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달러당 30.5원 폭등하면서 근 4개월 만에 1,100원선을 돌파(1,107.8원)했다. 추석 연휴기간 그리스 부도 우려가 증폭된데다 이날 그리스 국채를 대거 보유한 프랑스 대형은행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탓이었다. 안전자산(달러) 선호 현상에 따른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외환당국으로선 '불감청 고소원'이다. 환율정책의 우선 순위를 물가 안정에만 두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 미 신용등급 강등의 여파로 8월 무역수지(수출-수입)는 소폭 흑자(8억2,000만달러)에 그쳤다.
정부의 기조 변화는 기획재정부가 13일 개최한 국제금융시장 점검회의에서도 확인된다. 재정부는 "적정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 및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중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무역수지 흑자 감소가 눈으로 확인된 상황에서 아무리 물가가 어렵더라도 정부가 더 이상 환율 하락을 용인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물가 불안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동결한 것처럼 환율 정책도 물가보다는 수출에 더 관심을 쏟을 공산이 커 보인다"며 "환율 급등을 무작정 방치하지는 않겠지만 그간 원화가치가 많이 절상된 만큼 어느 정도 가치 하락을 용인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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