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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경남 내륙 역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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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경남 내륙 역사 기행

입력
2011.09.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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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왕릉 최치원 숲… 발길마다 옛이야기 소곤소곤

낮게 돌담을 두른 여염의 질박함과 서까래 위에 시 한 수 거는 고아함이 황토 빛깔로 남아 있는 곳.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으로 둘러싸인 경남 내륙은 여행보다 답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고장이다. 무논의 벼가 익고 배추에 알이 차기 시작하는 계절, 저녁 짓는 연기가 들을 덮는 풍경이 문득 그립다면, 경남의 옛고을로 떠날 행장을 꾸려보자.

추야우중(秋夜雨中)의 숲, 함양

조선 이전의 유적은 겨우 석물이나 남아 있는 한국에서 함양은 신라의 역사가 나무, 그것도 생물로 남아 있는 곳이다. 군청이 들어선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상림(上林)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 천령군(현 함양군) 태수였던 최치원(857~?)이 조성한 인공림이다. 여름마다 고을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으려 둑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1,100년 저쪽의 시간부터 피톤치드를 뿜어내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재다.

느릅나무, 갈참나무 등 낙엽수가 주를 이뤄 가을에 특히 아름답다. 새벽이면 안개에 젖은 낙엽이 거적자리처럼 깔려 밟는 즐거움을 주는 숲이다. 이런 곳에 오면 부모님이 비싼 월사금을 내주신 값을 해보자. 고등학교 문학수업 시간에 배운 최치원의 시 '추야우중'이다. "가을 바람에 오직 힘들고 괴로운 마음으로 시를 읊으니, 세상에 나의 시를 아는 사람이 적구나…"

함양에는 조선 선비의 삶의 결을 느낄 수 있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화림동 계곡에는 거연정 동호정 농월정 등의 정자, 남계서원 청계서원 등이 물길을 따라 늘어서 있어 답사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두 정여창(1450~1504) 고택을 중심으로 한 개평리 한옥마을은 반촌의 고풍스러운 풍광 덕에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종종 등장했던 곳. 솟을대문의 위용에 들어가기가 주저되지만 대청마루의 어르신이 어서 오라고 손짓해 주신다.

코스모스 핀 옛길, 거창

거창의 문화유산을 찾아온 답사객이 처음 들르는 곳이 수승대다. 덕유산의 차가운 물이 내려오는 원학동 계곡에 정자와 서원 등이 모여 있는 명승지다. 함양에서 이어지는 24번 국도가 고속도로처럼 새로 닦였지만, 코스모스 피어 있는 한적한 옛 도로가 수승대 답사길에는 제격이다. 국민관광지로 거창하게 개수되면서 예스러운 모습을 찾을 길이 없어졌지만, 이곳에 얽힌 퇴계 이황과 요수 신권, 갈천 임훈, 석곡 석팽년 등의 옛이야기는 여전하다.

요수와 갈천의 후손들이 서로 제 조상을 높이려 경쟁적으로 시구를 파놓은 거북바위가 수승대의 명물. 수승대의 전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요수정도 볼거리이지만, 자연석 바위와 제멋대로 휘어진 소나무를 초석과 기둥 삼아 세운 관수루의 호방한 생김새가 답사객의 눈길을 오래 붙잡아둔다. 수승대 입구 거창 신씨들의 세거지인 황산마을은 기와 지붕을 얹은 돌담길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조선 지사(志士)의 표상인 동계 정온(1569~1641)의 고택도 거창에 있다. 젊은 시절을 귀양살이로 보낸 동계는 병자호란 뒤 항복의 치욕을 이기지 못해 자결을 시도한 인물. 그러나 자결에 실패하자 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세상을 버렸다. 정갈하게 보존된 집과 제자들이 그를 기려 지은 모리재를 함께 묶어 답사 코스로 삼는 게 좋다.

소담한 옛마을, 산청

동쪽으로 흘러내린 지리산 능선이 평지가 돼 진주로 접어드는 곳에 산청 남사예담촌이 있다. 한옥의 정서를 간직한 마을 가운데서도 제일로 꼽히는 곳이다. 마을 회관을 돌아가면 높은 담으로 이뤄진 막다른 골목 끝에 있는 최씨 고가, 예담촌의 상징인 휘어진 회화나무 뒤편에 자리한 이씨 고가 등이 오종종 모여 있다. 300년 된 회화나무, 600년 된 감나무, 700년 묵은 매화나무 등을 정원수로 거느린 고택이 답사객들에게 열려 있다. 숙박시설로 개방된 한옥도 여러 채 있다.

금서면 화계리에는 가야의 제10대 임금인 구형왕의 왕릉이 있는데, 흙 봉분에 떼를 입힌 여느 왕릉과 달리 이 무덤은 피라미드 형태의 돌무덤이다. 무덤의 주인은 김유신의 증조부로 신라 법흥왕과 싸우다 결국 나라를 빼앗긴 비운의 인물이다. 퇴율(退栗ㆍ이황과 이이)과 더불어 조선 유학의 또다른 산맥을 이루는 남명 조식의 덕천서원도 산청에 자리한 빼놓을 수 없는 답사지다.

함양·거창·산청=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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