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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대장경 축전 여는 가야산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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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대장경 축전 여는 가야산 해인사

입력
2011.09.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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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는 천년의 지혜… 마침내 門이 열리다

세상일에 치일 때마다 도망치듯 치문(緇門)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이에게 해인사는 함부로 다가가기 힘든 곳이다. 은산철벽을 뚫겠다는 발심의 기운이 사철 가야산을 빽빽이 채우고, 부처의 피톨이 장경판전의 묵은 나무판 속에 뜨겁게 돌고 있기 때문이다. 생사를 건 구도의 긴장이 1,200년 이어져온 가람, 하지만 여행객들에게 한국의 고유한 빛깔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절집이기도 하다. 23일 이곳에서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 축전'이 시작된다. 올해는 초조대장경 조성이 시작된 지 꼭 1,000년이 되는 해다.

속살 드러낸 천년의 속삭임, 소리길

이름난 고찰이 으레 그러하듯 해인사로 가는 길도 아스팔트로 포장된 지 오래다. 아름다운 계곡길은 자동차 소음에 묻혀 잊혀졌다. 봄엔 진달래, 가을엔 단풍 빛깔에 수면이 붉게 물든다고 홍류동(紅流洞)으로 불리던 계곡이다. 경남 합천군은 해인사 초입에서 경내까지 6㎞ 가량 이어진 이 옛길을 대장경 축전에 맞춰 복원해 개방했다. 이름은 '해인사 소리길.'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 우주만물이 소통하는 소리(蘇利)라는 의미다.

멀찍이 차를 세워두고 이 길을 걸어 절로 올라갔다. 논두렁을 낀 들길을 시작으로 대나무 그늘로 어둑한 오솔길, 노송의 화라지에 허리를 굽혀야 하는 황톳길이 이어졌다. 차도를 내느라 길이 막히거나 계곡의 바위를 통과하는 부분에는 나무 데크를 깔았다. 전국 곳곳에 급하게 새로 그어진 트레킹 코스처럼, 소리길도 산과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곳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가야산의 깊은 산세는 그 어긋버긋함도 부드러이 품을 만큼 넉넉했다.

가야산 19명소 가운데 16곳이 소리길에 걸려 있다. 10세기 초 최치원이 이름 붙인 명소들이니 천년이 훌쩍 넘은 경관들이다. 멱도원, 축화천, 무릉교, 칠성대, 체필암 등등이 물길을 거슬러 이어진다. 농산정은 최치원이 신발만 남겨두고 신선이 됐다는 전설이 담긴 곳. 겨우 십여 리 걸음을 아끼자고 이 계곡길 한쪽에 콘크리트를 바르고 매연을 뿌리며 다녔던 세월이 죄스럽다.

느리게 가는 여름을 담은 햇살의 따가움과 이르게 오는 가을을 녹인 계곡물의 차가움이 섞여 기분이 상쾌해질 무렵, 이런 주련을 내건 해인사 일주문이 눈에 들어왔다.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ㆍ천겁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요)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ㆍ만세를 뻗쳐도 항상 오늘이다).'

축제장이 된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음력 팔월 초순, 하안거 들었던 수좌들이 가부좌 풀고 흩어진 이맘때의 절에는 누그러진 한산함이 흐른다. 하지만 백중과 추석 사이에 찾아간 절은 흥성흥성한 분위기였다. 장경판전 곁에선 무얼 새로 짓는지 기계 소리도 요란했다. 해인사의 긴장된 고요를 사랑하는 사람은 못마땅하게 여길 법도 하다. 일주문 지나 봉황문에 이르는 길에 만나는 느티나무 고목만이, 이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을 비운 채 죽은 부후목의 모습으로 여일했다.

대장경 축전은 해인사 초입 가야면 야천리에 마련된 주행사장과 해인사 일원에서 45일 동안 진행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행사는 선원 개방이다. 해인사는 24일 하룻동안 선원을 열기로 했다. 개산(開山) 1,2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해인사 선원은 일반인은 물론 스님들에게도 문턱이 높아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파격적인 결정에 비해 반응이 미지근해 해인사는 김이 샌 듯 보였다.

"숱한 전설이 깃든 선방인데, 사람들이 그 의미를 잘 모르는 듯합니다." 지대방 앞에서 만난 스님에게 슬쩍 말을 넣자 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호랑이, 사자 같은 어른들이 다 여기서 한 소식 했잖아요. 지금 ○○스님이 그렇게 대차게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것도, 다 여기서 뼈가 굵어서 그런 거야."

장경판전으로 올랐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절 마당의 소란도 잦아들었다. 촘촘히 꽂힌 삼장(三藏)의 가르침 틈새로 초가을의 사나운 햇살이 파고든다. 50년 전 납의(衲衣)를 입은 몸으로 이곳에서 처녀시집을 펴낸 고은 시인은 어느 책인가를 놓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15년 전의 글에도 오늘이 들어 있는 것인가. 오늘 다시 쓴다면 이 책 그대로 될 수 없으나, 이 책 그대로의 의미는 여전히 살아 있어도 된다." 15년을 1,000년으로, 책을 대장경으로 바꾸어도 말의 맥은 살아 있을 것이다.

합천=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2011 해인아트프로젝트 23일부터

팔만사천 법문과 현대미술이 만나면 어떤 풍경을 빚을까. 대장경축전 기간 해인사를 찾은 여행객은 좀체 보기 힘든 두 정신세계의 접속을 목격할 수 있다.

해인사는 축전 기간 10개국 34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2011 해인아트프로젝트'를 23일부터 11월 6일까지 연다. 해인사는 "대장경 조성은 문화적, 경제적 부흥과 함께 국민 통합을 가져온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이런 독창적인 화합 정신을 이어 받아 서로 다른 문화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화합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개최 의미를 설명했다. 전시 주제는 '통(通)'이다.

전시는 3개 부분으로 구성된다. 성보박물관에서 진행되는 국제전 '만물의 통'에서는 선(禪) 사상의 영향을 받은 비디오 작품, 20여톤의 재를 다시 부처로 만든 작품 등이 전시된다. 가야산 탐방로 곳곳에 조형물을 설치한 야외 조각전 '공간의 통', 경내 구광루에서 진행되는 국제회화전 '사고의 통'도 만나볼 수 있다. 전쟁, 환경오염, 종교 갈등 같은 세계인의 관심사가 작품을 통해 표현된다.

23일 개막식에서는 김아타의 설치작품 얼음불상이 공개된다. 녹아내리는 부처의 모습을 통해 무상(無常)의 가르침을 전한다. 해인사는 경내 공간을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으로 제공하는 사찰 레지던시 프로그램 '해인아트스테이'도 정례화할 계획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여행수첩/ 해인사

●수도권에서 해인사로 갈 때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IC에서 나와 33번 국도를 타고 가는 길이 편하다. 남부지방에서는 88고속도를 이용해 해인사IC에서 나오는 편이 낫다.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입장권으로 오도산 자연휴양림, 합천 영상테마파크 등도 이용할 수 있다. 농협과 경남은행 지점,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에서 예매할 수 있다. 어른 1만원, 어린이 6,000원. 20일까지 사전 예매하면 최대 35% 할인된 값에 살 수 있다. 문의 (055)211-6251.

●해인사 선원 개방 행사에는 24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팀, 총 400명이 선착순으로 참여할 수 있다. 문의 (055)934-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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