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여성 박모(32)씨는 올해 초 영어회화 실력을 쌓을 양으로 해외 펜팔사이트에 가입했다. 30대 영국인이라고 밝힌 회원 존 스미스씨가 유독 집요한 구애 공세를 펼쳤다. “기독교신자에 학벌도 좋고 돈도 많다. 그대와 사귀고 싶다.” 시큰둥하던 박씨에게 “목걸이와 돈을 보냈으니 운송회사 사이트를 확인해보라”고까지 했다.
그가 알려준 아이디와 송장번호를 입력했더니 실제 소포가 오고 있었다. 동시에 득달같이 운송회사에서 연락이 와 수수료 송금을 요청했다. 300달러를 보냈더니 이번엔 현금이 포함돼 말레이시아에서 의심거래로 묶여 보관료와 보증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미스씨도 “직접 현지에 가 해결할 테니 우선 비용을 치러달라”고 부탁했다. 운송회사 사이트에도 ‘연착’이라 표시된 터라 의심 없이 또 돈을 보냈다.
얼마 후 말레이시아 세관에서 스미스씨가 억류됐다는 통보가 왔다. 박씨는 홀린 듯 세관 로비자금과 변호사 선임비용 등을 송금했다. 300달러, 1,000달러 등 보낸 돈이 가랑비에 옷 젖듯 1만5,960달러가 돼서야 박씨는 정신을 차리고 금융당국에 신고했다. 알고 보니 스미스씨도, 운송회사(및 사이트)도, 세관도 모두 사칭이거나 가짜였다. 박씨는 “갖은 이유와 감언이설로 몰아붙여 조급한 맘에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박씨 같은 펜팔사이트 사기피해 신고가 최근까지 110건(피해금액 17만달러)에 달해 경찰에 국제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고발을 꺼리고 심지어 ‘그럴 리 없다’고까지 하는 탓에 피해 규모는 적발 건수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펜팔을 통해 송금 요청을 받으면 신고(02-3145-7944, 02-700-6300)하는 게 상책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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