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한국학의 즐거움'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한국인, 한국문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한국학의 즐거움'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한국인, 한국문화…

입력
2011.09.09 17:30
0 0

한국학의 즐거움/주영하 등 지음/휴머니스트 발행·412쪽·1만9,000원

어제 회식에서는 삼겹살과 소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도 남았지만, 아니다 다를까 된장찌개에 공기밥 없이 자리는 끝나지 않았다. 추석 차례상을 물리고 한 상 차린 음식 다 먹고 난 뒤에도 역시 나물 반찬에 밥 한 술 뜨지 않으면 한 끼 못 먹은 게 된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도 밥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이지만, 그네들은 쌀이 아닌 밀이나 메밀로 만든 면도 아주 즐긴다. 한국인에게 밥은, 특히 새하얀 쌀밥은 말 그대로 은유적 의미 하나 안 보태 '생명'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한국학의 즐거움> 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우리 문화 속에 자리잡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22가지 스케치를 담고 있다. 한국만의 독특함이라고 해도 좋고 한국인의 생활에 깊게 뿌리 박은 사고방식, 행태라고 해도 좋을 것들에 대한 소묘다. 철학이나 종교, 마음, 사랑을 주제로 풀어놓은 글이 있는가 하면 음식, 건축, 미술 이야기가 있고 과학, 의학, 경제, 역사도 다룬다. '한류'의 본령이라 할 한국 드라마, 영화가 지닌 정체성을 탐구한 글도 있다.

밥 이야기를 좀더 해 보자. 민속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한국의 음식'이라는 글에는 1890년대 주막에서 개다리소반을 받아 식사하는 도포와 갓 차림의 남자 사진이 등장한다. 밥상 위에는 밥그릇, 국그릇과 김치 보시기, 간장종지, 장아찌, 나물, 콩자반 등을 담은 접시 등 모두 8개의 그릇이 놓여 있다. 인상적인 것은 밥그릇, 국그릇의 크기다. 밥그릇은 높이가 9㎝, 입의 지름이 거의 13㎝ 정도 되고 거기에 밥을 가득 담았다. 요즘 세 끼 분량쯤 된다. 국그릇은 더 크다. 주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 피난기인 <쇄미록> 에는 전쟁통인데도 불구하고 '한 끼'에 7홉(420g)의 쌀로 밥을 지어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사람들이 대식가였다는 것은 선교사 등 외국인의 기록에도 제법 등장한다.

주 교수는 이를 '조선 사회가 절대 빈곤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생기면 물불 가리지 않고 먹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힘들지만 조선 사람들은, 늘 먹을 게 모자라 소식(小食) 문화를 정착시킨 에도(江戶) 시대 일본인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 종교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쓴 소리로 시작하는 종교학자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의 글도 읽어 볼만하다. '한국 종교는 망해야 산다'고 줄곧 이야기 해온 최 교수이지만 이 글에서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종교의 순기능과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종교 면에서 정말 특이한 것은 '공간적으로 동서양의 대표 종교가 다 들어와 비슷한 세력으로 각축하고 있고 시간적으로 고대 종교와 현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을 다같이 공휴일로 지정한 나라가 없다는 거다.

한류 열풍의 주역인 드라마, 영화도 물론 한국적인 것을 탐구하는 '한국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안 봐도 줄거리가 뻔하다'는, 그러면 당연히 재미가 없어야 할 한국 드라마가 지닌 매력의 정체를 맛을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톡 쏘아서 눈물 쏙 빼고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청양고추'의 맛에 비유했다. 뼈대는 엉성하지만 '거기에 붙어 있는 살들이 매우 맛깔스럽고 풍부하며 매력적'이어서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쉽게 분석되는 뼈대의 취약성에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각 부분이 선사하는 여러 풍부한 매력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작품을 계속 재미있게 보게 되는 것'이다.

백석의 시를 통해 한국인의 마음 근저에 자리잡은 한(恨)의 정체를 더듬거나(시인 장석주), 근대화 이후 주류가 된 일국사 중심의 역사서술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문명교류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보자(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문제제기도 있다. 광복 이후 한국식 경제 성장의 특징을 요약해,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성공이라는 믿음과 그에 대한 분노라고 해석하는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지금 한국 경제는 그 같은 믿음과 분노의 상호작용으로 또 다른 갈림길에 서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학'이라는 학술적인 용어로 포장하긴 했지만 이 책이 앞으로 한국학 논의를 위해 무슨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각각의 글은 비슷한 체제를 따랐다기보다 그냥 필자들의 단상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읽을수록 재미가 난다. '한국인 당신은 누구입니까'에 대한 작은 대답을 이 책이 선사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외국인이 보는 한국인/ "우호적이지만 여전히 폐쇄적"

한국을 경험한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호오가 엇갈린다. 아무래도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 건 쓴소리 하는 쪽. 대표적인 것이 <발칙한 한국학> (2002년)이라는 책으로 눈길을 끌었던 미국 문화비평가 J 스콧 버거슨(44) 같은 사람이다. 그가 몇 년 전에 낸 <대한민국 사용후기> 라는 책 서문의 제목은 '나는 왜 대한민국을 포기했는가'이다. 책에서 그는 '작은 미국이 되려고 용을 쓰는 한국이 싫었다'고 잘라 말하고 '길거리에 나서면 매력이나 예의 따위는 찾아보기 어려운, 차갑고 야만적인 사람들만 우글거린다'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하버드 박사의 한국 표류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새 책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노마드북스 발행)는 버거슨류와는 다르지만 역시 한국에 대한 이방인의 평가를 담고 있다. 한중일 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경희대 교수는 대만과 일본에서 공부해 중국, 일본 문화를 체험했고 부인이 한국인이다.

한국에서의 경험, 만난 사람들, 가족과 자신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두루 담은 이 책에는 한중일 사교문화를 비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일본에서 6년이 지나도록 사람들과의 만남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국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거리낌 없이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며 '한국은 우호적인 사교문화를 갖고 있다'고 했다. 또 중국인은 '항상 여유롭고 인내심이 강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강한 경계심을 갖는' 편이고, 일본인은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해 '주변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꺼'리며 그래서 '한국이나 중국보다 더 엄격하게 사회적인 서열을 중시한다'고 평했다.

외국인이어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을 자주 이야기하면서 그는 '한국의 전통을 발전시키되, 민족이란 협소한 개념에서 벗어나 당당한 세계의 리더로서'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버거슨이 신랄하게 한국을 비판하면서 하는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