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의 H(38)씨는 지인의 보증을 섰다가 1억원 빚을 졌다. 집요한 추심에 견딜 수 없던 그는 2008년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장인이 암 선고를 받아 목돈이 필요했지만 신용등급 10등급인 그에게 돈을 대출해줄 금융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P2P(peer-to-peer) 금융업체 P사 사이트에 사연을 올리자 일면식도 없는 30여명이 모여 100만원을 빌려줬다. H씨는 다달이 30여만원을 갚아 4개월 만에 상환했고, 이후에도 아쉬울 때마다 100만원, 300만원을 빌려 쓰고 상환하고 있다.
제도권 금융회사의 대출이 막힌 저신용자들에게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대출해주는 P2P 금융이 인기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비교적 낮은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고 빌려주는 사람은 은행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거래규모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P2P 금융이 국내에 등장한 것은 2007년. 초기 4~5개 업체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P사와 M사 두 곳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양사 모두 인터넷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각각 5만여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M사의 경우 올해 상반기 총 1만8,000여명(중복 투자자 포함)이 2,700여명에게 투자했으며, P사는 5,000여명이 1,080명에게 대출해줬다. 불과 5년 만에 양사 합쳐 160억원대로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200억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P2P금융은 저신용자(8~10등급)들에게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각각 투자할 금액을 결정하는 '경매'방식으로 이뤄진다. 대출을 원하는 사람은 액수와 대출기간, 대출이자율 등을 인터넷에 올린다. 여기에 돈을 빌리게 된 사연, 상환의지는 물론 월 소득과 생활비, 통신비, 기존대출상환 내용 등도 자세히 밝힌다. 거래 사이트를 보면 '배 속 아이를 위한 결혼자금', '갑작스러운 아내의 병원행', '인생 재도전을 위한 투자자금' 등 절절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빌려주는 사람은 이를 읽고 자신이 투자할 금액과 받고 싶은 이자율을 결정해 경매에 참여하는데, 빌리는 사람이 원하는 액수에 도달하면 낙찰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 모두 이익을 보는 윈윈 금융"이라고 P2P금융을 설명한다. M사와 P사의 평균 대출이자는 연 26%대다. 대부업체 대출이자 법정 상한선인 연 39%보다 훨씬 낮다. 빌려주는 사람도 적은 금액을 다수에게 빌려주는 분산투자로 돈을 떼일 위험을 낮추고, 20%안팎의 높은 이자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지만, 놀랍게도 M사와 P사의 연체율은 각각 3.98%와 5.8% 수준으로 저축은행(15.8%), 대부업(7.2%)의 연체율보다 낮다. M사 관계자는 "제도권 금융이 외면한 저신용자들이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살아가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개념의 금융이라는 점에서 법적 테두리가 모호하다는 점은 문제로 꼽힌다. M사는 대부업, P사는 통신판매업으로 등록돼 있다. 금융 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나 당국의 감독에서는 사각지대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개인간의 거래 개념이어서 감독 권한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2P금융은?
2005년 영국 런던에서 금융권 출신들이 만든 개인 대출 서비스 사이트 조파닷컴(uk.zopa.com)이 시초다. 현재까지 약 1억3,000만파운드(약2,220억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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