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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작, 그 곳] (4) '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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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작, 그 곳] (4) '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입력
2011.09.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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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장과 화해의 교차점… 10년뒤 '그들의 우정'을 다시 그릴 수 있을까

태양은 맹렬했다. 차창에 부딪히는 늦여름 햇볕은 요란했다. 임진강은 소란스레 빛을 튕겨냈고, 나무들은 땡볕이 못마땅한 듯 작은 바람에도 초록을 펄럭였다.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살아있음을 과시하는 듯한 날씨. 그러나 8월의 마지막 날 경기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의 오전은 무섭도록 고요했다. 작열하는 볕은 그저 인공조명처럼 무력했고, 바람조차 숨을 멈췄다. 눈치 없는 매미 울음 소리만이 을씨년스런 공간을 채웠다.

물리적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건만 역사적 시간은 1953년 이후 동작 그만 상태가 되어버린 듯한 공간. 그곳에선 마네킹 같은 군인들이 선글라스 낀 부동자세로 경계의 시선을 내뿜었다. 11년 전 개봉한 한 편의 한국영화 속보다 공동경비구역(JSA)은 더 삼엄했다.

남북 대치 60년의 축약어 판문점

판문점. 1951년 10월25일 한국전쟁에 대한 휴전 협상 테이블이 설치되면서 지구촌의 시선이 쏠린 곳이다. 53년 3년 간의 전쟁에 긴 쉼표를 찍는 휴전협정이 조인됐고, 76년엔 북한군의 도끼만행 사건이 있었다. 누군가는 이곳을 넘어 남쪽에 안겼고, 한 기업가는 1,001마리의 소를 몰고 북쪽 고향 방문의 꿈을 이뤘다. 갖은 협상과 군사용어들이 오가고 부딪히며 간혹 파열음을 내던 이 곳은 남북 체제 경쟁의 최전선이었고, 20세기 동서냉전의 상징이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유행가나, 달콤한 과자 이름은 틈입할 1㎜의 공간조차 허용되지 않을 듯한 장소. 2000년 9월9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가 개봉할 때까지 우정이란 낭만적 단어는 입에 올릴 수 없는 곳이었다.

'공동경비구역'는 오랜 금기를 깬 작품이었다. 오랜 시간 한반도 남쪽의 대중문화에서 남북교류, 남북화해는 일종의 금칙어였다. 남북 병사가 비밀스러운 만남을 통해 우정을 나누고 결국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한다는 내용은 반공교육에 젖은 대중들에게 각성제 역할을 했다. 다큐멘터리나 뉴스 화면에만 허용됐던 판문점 모습이 거대한 스크린에서 다뤄진 것도 이례적이었다.

'공동경비구역'이 영사기에 오를 즈음 남북 화해 분위기는 절정이었다. 그 해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으로 한반도는 장밋빛에 물들어 있었다. "통일이 멀지 않았다" "남북 군사 대결 시대는 끝났다"는 성급한 예측이 쏟아지던 때였다. '공동경비구역'이 극장에 나서기도 전 제작사인 명필름엔 시샘 어린 질문들이 몰렸다. "대체 어디서 점을 봤길래."

질시 어린 부러움과 달리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남북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영화를 기획하던 1999년 6월15일 서해교전이 벌어졌고, 촬영이 한창이던 4월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됐다. 표변을 거듭하는 남북관계는 '공동경비구역' 제작 관계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이거 큰 일 났구나 하다가 개봉을 앞두고선 남북 화해 분위기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되돌아봤다. 충무로의 예감대로 '공동경비구역'은 583만 관객이 몰리며 21세기 첫 흥행작이 됐다. "대중성과 작품성이 결합된 모범적인 상업영화로 평가 할만하다. 사회적 이슈가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관객이 몰려들었다."(심재명 대표)

청량리에서 만들어진 남북 병사의 사연

90년대 중반 대학생이었던 박상연 작가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귀가 열리는 순간을 접했다. 전역한 친구들이 이런저런 군대 이야기를 옮기면서 판문점이 거론됐다. "그곳에선 남북 군인들이 만나 사진도 교환한다"는 말이 나왔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박 작가는 소설로 쓰고 싶은 욕심이 났다.

인터넷이란 용어가 낯설기만 했던 시절, 판문점 관련 자료는 손에 쥐기 쉽지 않았다. 국회도서관을 찾아도 자료는 한정됐고, 지도에서조차 판문점은 표기돼 있지 않았다. 우연히 박 작가는 JSA군복을 입은 병사 사진 한 장을 입수했다. 휴가병에게 매달려 취재를 해보면 되리라 생각하며 청량리역을 지켰다. JSA군복을 입은 휴가병들을 무작정 붙들고 차 마시고 맥주 한잔 하며 판문점에 대해 귀동냥을 했다. "북한 군인과 만나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는 한 병사와 이야기를 나눴고, "비무장지대 수색 중에 북한군과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들었다.

"당시 알제리에서 한국 여성과 북한군 장교가 만난다는 내용의 영화 '인샬라'가 개봉했다. 남한 남자와 북한 여자가 베를린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드라마 '해빙'이 방영된 시기이기도 하다. 판문점이 철책 없이 트인 공간이라는 것도 당시 알게 됐는데 굳이 돌아 돌아 먼 곳에서 만나게 하지 말고 판문점에서 남북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판문점은 엄청난 기가 부딪히는 곳이면서도 지루하고 평온한 곳이다. 그런 장소의 병사들이라면 서로 만나고 싶지 않을까."

박 작가의 구상과 취재는 97년 소설 'DMZ'로 현실화 되고, 이 소설은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밑그림이 됐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박 작가는 "지적 받지 않기 위해 취재를 정말 열심히 했다. 너무 정확하게 쓰면 조사 나올까 겁이 나서 일부로 틀리게 쓴 것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DMZ'로 작가의 꿈을 이루게 됐고, '공동경비구역'의 흥행을 발판 삼아 "택시를 거리낌 없이 타고, 집필 의뢰를 받는 작가"로 거듭난다. 박 작가는 인기 드라마 '선덕여왕'과 영화 '고지전'을 거쳐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대본을 집필 중이다.

판문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면서도 정작 박 작가는 판문점을 찾지 못했다. 그는 "정말 가보고 싶었지만 당시엔 너무 가기 힘든 곳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화가 결정된 뒤인 1999년에야 스태프, 배우들과 두 차례 판문점을 방문했다. "문턱 높이 정도의 남북 경계선이 우스우면서도 놀라웠다. 반공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무섭기도 했다"고 박 작가는 회고했다.

김광석, 초코파이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

'공동경비구역'은 긴장과 웃음을 교차시키며, 냉기와 온기가 섞인 감동을 빚어낸다. 판문점이라는 남북 대치 공간의 냉랭한 공기를 전하면서도 남북 화해라는 짧은 구원의 순간을 담아내며 관객들의 박수를 끌어냈다. 총소리로 열린 영화 초반부 한국휴전중립국감독위원단 소속 스위스 장성은 이런 대사를 던진다. "지금 한반도는 겨울 숲이다. 불씨 하나에도 몽땅 타버리는 겨울 숲." 북한군 초소를 찾았다가 뜻하지 않은 총격전을 벌이고 탈출한 이수혁(이병헌)을 영웅으로 칭송하는 한국군 장성이 내뱉는 말도 판문점과 한반도의 현실을 대변한다. "여기, 중립 설 자리 없어!"

북한군 초소에서 정담을 나누던 남북 병사들의 대화 속에도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분단의 암울함이 스며있다. "양키 놈들 폭격을 한다는데 가만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핵무기니 미사일이니 안 만들면 되잖아요." "거 내가 만드나?"

하지만 관객들은 북한 병사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반합으로 술을 나눠 마시고, 초코파이로 남한 병사와 우정을 쌓는 모습에서 막연하게 여겨지던 민족적 동질감과 위안을 찾았다. 총격사건의 실체를 조사하던 한국계 스위스 소령 소피 장(이영애)이 분단이 잉태한 필연적 비극을 목도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한반도의 아픔을 보다 절절하게 느꼈다. 휴전선 너머 화해의 손길이 오가는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이 영화는 새삼 깨닫게 해줬다. 이수혁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한 초소에 놀러 가고, 결국 북한 병사와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상황은 엄혹한 분단의 모습을 은유한다.

박상연 작가는 "서로 싸우지 말자며 노래를 하고 그러지만 결국 총을 들게 되는 상황을 표현하려 했다. 그런 무력한 개인들의 모습이 이 영화의 주제였던 듯하다"고 말했다.

시대의 상징으로 남은 사실주의 판타지

11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정세는 싸늘하다. "한반도는 긴장과 화해가 수시로 오가는 곳이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뜨거운 화해의 시간 끝에 관성적인 긴장의 시대가 온 것일까. "그림자가 (경계를) 넘어왔다" "내 꿈은 말이야. 언젠가 우리 공화국에 남조선보다 훨씬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것이야" 등 유머 깃든 대사로 표현된 남북 체제 경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일까.

'공동경비구역'에서 네 명의 남북한 병사는 달밤에 닭싸움, 팔씨름을 하며 서로의 정을 확인한다. 영화는 남북 대치라는 현실은 사실적으로 그려낸 반면 "다 큰 새끼"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유아적인 놀이를 통해 남북의 화해와 우정을 희구한다. 일종의 사실주의 판타지인 셈. 형용모순의 장르적 용어로 표현할 수 있는 '공동경비구역'은 상식으론 설명할 수 없고, 접근 불가능한 한반도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인지 모른다.

"11년 만에 남북관계를 다룬 '고지전'에서도 양쪽 병사가 교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한국전쟁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대립하고 있고,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 아닐까. 10년 뒤 다시 한번 남북관계를 다뤄보고 싶다. 그 때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박상연 작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남북 영화 변천사

남북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한반도 정세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을 내건 전쟁영화들이 쏟아진 이래 더디지만 조금씩 진화의 과정을 밟았다. 때론 퇴행적인 영화들도 등장했지만 주로 남북의 대립을 강조하던 내용은 화해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반공 논리에만 의존하지 않는 전향적인 영화는 1950~60년대에도 극장가에 선보였다. 한국전쟁 직후에 나온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1955)은 선구적인 작품. 빨치산 부대를 인간적으로 묘사해 파문을 일으켰다. 북한군 미화 논란에 휩싸였던 이만희 감독의 '군번 없는 용사'(1966), 멜로를 통해 남북 문제를 표현한 김기덕 감독의 '남과 북'(1965), 구원의 문제를 다룬 유현목 감독의 '순교자'(1965)도 반공영화의 고정 틀을 벗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임권택 감독의 '짝코'와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이상 1980)은 휴머니즘 관점에서 한국전쟁의 후유증을 전했다.

반공으로 요약될 수 있는 천편일률적 남북 영화는 1987년 민주화 바람과 함께 전환기를 맞았다. 빨치산 출신 작가 이태의 동명소설을 옮긴 '남부군'(1990)과 조정래 작가의 동명소설이 밑바탕이 된 '태백산맥'(1994)이 한국전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주목을 받았다. 박광수 감독의 '베를린 리포트'(1991)는 독일 통일을 배경으로 남북의 현실을 조망했다.

90년대 후반 블록버스터 '쉬리'가 등장하면서 남북 관계 영화는 볼거리를 갖춘 적극적인 오락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2004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 정점이었다는 평가다.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에 판타지 요소를 가미해 800만 관객을 모았다. 한국영화사를 전공한 조영정 박사는 "2000년대 들어 한국전쟁 영화들은 전쟁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퇴행적"이라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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