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검찰 조사과정에서도 법학자이자 교육자다운 면모를 보였다. 5일 오전 11시 검찰에 처음 출석한 곽 교육감은 16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6일 새벽 검찰청사 밖으로 나왔다. 곽 교육감은 5일 오후 7시쯤 심야조사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검사에게 밝혔고, 이에 따라 조사는 사실상 저녁 8시쯤 대부분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피의자가 신문조서 내용을 확인하는 데 3,4시간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오후 11시쯤 귀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곽 교육감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로부터 4시간 이상 지난 새벽 3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다. 곽 교육감이 조서에 서명하기 전 내용을 확인하는 데 전체 조사시간의 절반을 쓴 셈이다. 검사가 묻고 피의자가 답변한 내용을 정리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기 때문에 피의자로선 가장 중요한 문건이다. 이날 영상녹화가 실시되면서 진술 과정이 담긴 동영상을 CD로 제작하고, 그 내용을 확인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곽 교육감이 조서내용 확인에 이처럼 신중을 기한 것은 피의자의 권리를 충분히 활용, 검찰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피의자 신문 과정에선 사실상 검찰이 주도권을 가진 반면, 신문조서 확인 과정에선 피의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권한이 있어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곽 교육감이 방어와 공격을 고루 구사했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곽 교육감은 조서에 기재된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봤고, 의미가 통하더라도 문맥이 잘못된 게 있으면 검사에게 수정을 요구했다"며 "조서에 서명을 한 뒤에도 한번 더 조서를 확인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최근 일부 정치인은 검찰 조사 때 묵비권을 행사하고 재판에서 자신을 적극 방어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명분은 검찰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지만, 실제로는 검찰에 전략을 노출시키지 않고 재판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곽 교육감은 애초부터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자세를 보였고, 대신 신문조서를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삼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고 한다. 법원 관계자는 "검찰 조사 때 묵비 대신 진술을 택해 자신의 떳떳함을 강조함으로써 주장에 신뢰를 높일 수 있고, 꼼꼼하게 조서를 확인함으로써 검찰이 조서의 허점을 이용할 여지를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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