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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금감원이 중앙은행이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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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금감원이 중앙은행이 된 사연

입력
2011.09.0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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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를 결정하는 곳이 한국은행이라고?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정하면 그에 따라 은행 이자율이 움직인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경제학의 ABC나 다름없는 이 원리는 지금 작동하지 않는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금리는, 특히 대출이자율은 금융감독원이 만든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중앙은행이 해야 할 일을 금융감독기관이 대신하고, 건전성 정책이 통화정책을 대체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 규제도 좋지만…

요즘 은행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대출받기가 왜 이리도 힘든지, 이자율은 또 왜 이렇게 높아졌는지. 그리고 아마도 상당수는 대출 자체를 포기하거나 나중으로 연기했을 것이다.

모든 게 가계부채 때문이다. 지난 달부터 감독당국은 은행들에게 가계대출을 억제하도록 엄명을 내렸고, 이에 지난 달 한때 대출창구 자체를 폐쇄하는 과격함까지 보였던 은행들은 현재 심사강화를 통해 대출고삐를 강하게 죄고 있다. 더불어 우대금리 폐지 등을 통해 실질 대출이자율도 올리고 있다.

사실 가계부채 만을 놓고 보면, 이건 나쁜 정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경제의 가장 위험한 뇌관이 가계부채란 점, 그런 만큼 더 이상 빚이 늘어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점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부채구조조정(디레버리징)에 돌입했을 때 유일하게 가계부채를 늘려온 나라가 한국이란 사실을 안다면, 뒤늦게라도 당국과 은행들이 빚의 폭발력을 깨달은 건 다행스럽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가계부채증가를 막는 게 절실하다 해도 이건 아니라고 본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고, 모든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게 기본 이치다. 대출금리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시장(채권)금리→은행 자금조달비용 변화를 통해 정해지는 게 상식이다. 그런 만큼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인 기준금리가 변하지 않았는데,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시장에선 오히려 하락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 대출이자만 오른다는 건 넌센스다. 가계대출 억제도 좋지만 이런 식이라면 중앙은행은 왜 존재하고, 시장금리는 또 왜 있어야 하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인플레이션이나 경기 등을 고려한 '거시적'대응수단인 만큼 가계대출 문제는 오히려 건전성 규제 차원의 '미시적'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지금이 그럴 타이밍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요즘 이사철을 맞은 서민들은 전세보증금 때문에 아우성이다. 모아 놓은 돈도 없는 이들이 아이들 전학까지 감수하며 싼 동네로 집을 옮기지 않으려면 현실적으로 대출 외엔 길이 없다. 그런 이들을 은행마저 외면한다면, 게다가 이자까지 올린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지. 대출이 경색되고 금리가 오르면 집 있는 사람(주택담보대출 수요자) 보다 집 없는 사람(신용대출 수요자)들이 더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당국은 모른다는 말인지. 서민들로선 서럽고 분노할 일이다.

실기 그리고 뒷북

더구나 지금은 경기둔화 조짐이 역력한 시기다. 고강도 대출긴축을 펴야 했다면 경기회복 속도가 빨랐던 작년이 적기였다. 더블딥 걱정까지 커지는 지금은 아무리 봐도 대출규제를 그렇게 강화할 때가 아닌 듯싶다. 가계부채의 심각성 때문에 대출긴축 기조는 유지한다 해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나갈 상황은 아니란 얘기다. 정책 타이밍을 실기한 것도 모자라, 적기가 아닌 때에 뒷북을 치는 건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것일 따름이다.

가계부채는 통화 정책의 문제인 동시에 건전성 정책의 문제다. 한은과 금감원이 함께 고민할 사안이고 섬세한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한은은 감독권 신장의 숙원을 풀었다고 환호할 것이 아니라, 금리정책을 사실상 금감원이 주도하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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