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계에 '사재기'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운영위원회는 6일 한경BP 출판사가 자사가 낸 책 <바보 빅터> 를 인터넷 등을 통해 사재기한 혐의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운영위는 출판사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에 법적 조치를 의뢰하는 한편 전국 서점에 이 책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제외할 것을 요청했다. 현재 출판사는 사재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바보>
<바보 빅터> 는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 로 알려진 호아킴 데 포사다의 신작으로 편견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기계발서다. 지난 2월 출간 이후 줄곧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지키며 현재까지 약 25만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마시멜로> 바보>
판매부수를 부풀리기 위한 사재기는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다. 한국출판인회의가 2001년 출판사 3곳을 사재기 혐의로 회원사에서 제명하고 2007년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를 설립해 감시를 강화하면서 공공연한 사재기가 줄긴 했으나 여전히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출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중견출판사 편집자는 "요즘은 판매 데이터가 지역, 시기별로 노출되기 때문에 도서 사재기가 예전에 비해 어려워졌다"면서도 "아직도 일부 중소출판사는 사재기 유혹을 끊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출판사들이 사재기 유혹에 빠지는 것은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책 구매의 중요 기준으로 삼고 있는 탓에 책 광고에 들이는 비용보다 사재기가 훨씬 더 효과적이란 판단에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출판사가 주력한 신간의 경우 광고비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는데, 사재기는 광고비보다 훨씬 저렴하게 책을 노출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출판계 불황이 심화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사재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설립 후 사재기 신고 접수는 연 평균 3,4건. 하지만 올해는 8월 말 현재 5건이 접수됐다. 올 1월 출판법이 개정돼 도서 사재기 과태료 상한액이 3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10배가 인상됐지만 사재기 신고는 더 늘어난 것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사재기에는 인터넷 서점 아이디를 여럿 동원해 분산 구매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을 써 며칠에 걸쳐 현금 구매하는 방법 등이 동원된다. 사재기를 은폐하기 위해 때맞춰 저사 사인회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서점에서 책을 대량 구매하다 적발됐을 때 "학교 수업 교재"라고 잡아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는데 감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의 인력은 센터장과 조사원, 단 두 명뿐이다. 이들이 한해 70~80건 신고되는 도서정가제 위반과 사재기를 모두 감시한다. 이 때문에 출판인 사이에 사재기 소문이 떠돌거나 신고를 받은 도서에 한해 조사가 이뤄진다. 조사 기준 역시 ▦같은 책을 같은 주소지로 여러 권 구매 ▦같은 구매자가 같은 책을 반복적으로 주문한 책에 한정돼있기 때문에 추적이 쉽지 않다. 한국출판인회의 관계자는 "사재기의 경우 대부분이 출판사의 시정조치로 끝나지만 출판사가 사재기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 문화부에 법적 조치를 의뢰한다. 최근에는 해당 출판사가 명예훼손 등으로 신고센터를 소송하는 경우도 있어 조사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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