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시·억압 분위기 팽배… 안보 앞에 인권·자유 벌거벗다
9ㆍ11 사태 직후 미국은 전방과 후방이 따로 없는 예측 불가능한 테러 위협에 휩싸였다. 이후 10년 동안 미국인을 사로 잡은 것은 본토마저 안전하지 않다는 충격과, 후속 테러의 공포였다. 테러와의 전쟁을 직접 지휘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9ㆍ11 이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추가 테러를 막는 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내부에서 벌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그 전선이 훨씬 넓었고 양상도 달랐다.
사회에 전시 분위기를 강화하는 캠페인이 늘고 용기, 희생, 애국심 등 군사적 미덕이 어젠다로 부상했다. 애국주의가 유행하고 군에 대한 지지가 종교화하면서 사회는 병영처럼 변해갔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레드 스테이트(Red State)'가 늘면서 정치 지형은 보수적으로 변모했다. 다수가 된 보수 정치권은 테러 방지를 위해 자유의 제약마저 인내할 수 있다며, 광범위한 국민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의회와 행정부는 연방수사국(FBI)에 영장 없이 국가안보증을 제시하고 개인 이메일, 전화통화, 쇼핑정보를 수집할 권한을 부여했다. 외국인만 담당하던 국가안보국(NSA)에는 내국인 감청이 허용됐다. 국토안보법에 따른 국가안보증은 9ㆍ11 이후 연간 2만건 이상씩 발부됐다. 공항과 기차역, 경기장 등 대중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요새처럼 변했으며,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신발을 벗는 게 당연해졌다. 앤드루 바세비치 보스턴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는 "9ㆍ11이 미국의 모든 것을 보다 억압적인 것으로 변모시켰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건을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스크에 넘겨 구금된 브레들리 매닝 일병에게 알몸 상태로 자도록 강요한 것은 미국의 법이었고, 옷을 입힌 것은 세계의 비난여론이었다.
미국은 외국인에게는 되도록 문을 닫아버리는 배타적인 대응을 했다. 8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조사를 받았고 그 중 다수가 정당한 절차 없이 억류 또는 추방됐다. 미국을 여행하려는 중국인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국보다 4배나 긴 48일을 기다려야 미국 비자 인터뷰를 할 수 있다. 이 바람에 지난해 유럽을 여행한 중국인은 370만명이나 됐지만 미국 방문객은 80만명에 그쳤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테러 위협에 맞선 지 10년 만에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은 "미국이 9ㆍ11 때보다 더 강해졌고 테러위협에 대응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안보 수준은 높아졌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고 엄격한 프라이버시 보호 전통마저 양보해야 했다. 정치를 지탱해온 견제와 균형, 그리고 자유주의 종가라는 국가 이미지도 상처를 받았다. 이런 현실에 대해 법률 논평가 제르피 로렌은 '벌거벗은 군중'으로 설명했으며 카렌 그린버그 뉴욕대 교수는 "정의가 법의 밖으로 나왔다"면서 아서 코난도일의 에 비유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 테러전쟁 성공했나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사살됐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도 붕괴했다. 올해 5월 빈 라덴 사살 이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의가 실현됐다"고 했고 대테러 전쟁을 시작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드디어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10년간 이어진 대 테러 전쟁은 언뜻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1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 '9ㆍ11의 대가'(The Price of 9/11)에서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부터 한 탓에 미국은 엄청나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고 비판했다.
스티글리츠 교수가 비판한 요점은 크게 3가지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불법 억류와 테러용의자 고문 등에서 보듯 대테러 전쟁을 핑계로 미국 사회의 기본 원칙을 훼손했고,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은 14조달러가 넘는 재정적자로 이어져 경제를 파탄 냈으며, 대테러 전쟁 이후 오히려 일상적인 테러 위협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알 카에다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지만 이 단계에 오기까지 미국이 치른 대가는 엄청나다"며 "테러와의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 오래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이슬람 무장단체의 보복 테러 위협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다. 9ㆍ11테러로 죽은 사람은 3,000여명이지만 대테러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 병사는 그 2배가 넘는 7,000여명에 이른다.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라이언 젠킨스 선임고문은 "빈 라덴의 죽음으로 테러가 끝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질서에서 미국이 밀려나고 있는 현상도 대테러 전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헤게모니의 종말'이란 기사에서 미국이 대테러 전쟁에 지나치게 힘을 쏟은 탓에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을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기우는 사이 중국이 G2로 부상하며 반사이익을 챙겼고 세계 경제의 중심 축은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브릭스(BRICs)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와 달리 국제 질서가 다극체제로 급변하면서 군사적 패권 상실에 이어 미국이 경제적 패권마저 내놓을 위기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 테러전 비용 10년간 3조 달러 이상
9ㆍ11테러 직후 시작한 대테러전쟁이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은 지금 엄청난 재정적자와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는데 전문가들은 그 주요 원인으로 대 테러 전쟁 비용을 꼽는다.
미국 브라운대 왓슨 국제관계연구소가 6월 발표한 '전쟁의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전투비용, 참전군인 사회복지비용, 전비 조달을 위해 발행한 국채 이자 등을 포함한 지난 10년 미국의 포괄적 전쟁 비용은 3조7,000억~4조4,000억달러에 이른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5일 내놓은 분석은 좀 더 구체적이다. 뉴스위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포함해 미국 내 공항 보안 관련 비용, 국토안보부와 정보기관의 테러 관련 비용 등을 합치면 3조2,280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항목별로는 순수 전쟁 비용으로 2조6,000억달러가 들었고 국토안보부와 정보기관의 예산으로 각각 3,600억달러와 1,100억달러가 지출됐다. 몸수색 등 공항 보안 검색 강화로 1,000억달러의 사회적 손실 비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때만 해도 흑자였던 미국의 재정은, 막대한 전비 때문에 거덜이 나고 말았다. 누적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맞먹는 14조달러에 이르는 빚더미에 오른 것이다. 그 여파로 미국 정치권은 연방정부 부채한도 증액 협상을 둘러싸고 한동안 진통을 겪었고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고 말았다. "피를 흘리며 파산하게 할 것"이란 오사마 빈 라덴의 공언은 과장됐을지라도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에 균열이 간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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